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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알라딘 Open API 제공 도서 정보
어린 시절, 개구리는 내게 이웃이나 마찬가지였다. 시골에서 자랐기에 개구리는 특별히 찾아 나서야 만날 수 있는 생명체가 아니었다. 풀섶에서도 만났고, 논에서도 만났으며, 저수지와 개울가에서도 쉽게 마주쳤다. 때로는 나무 위에서도, 산길에서도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과 개구리가 서로의 영역을 굳이 나누지 않고 살아가던 시절이었다.
긴 겨울이 지나 봄볕이 따뜻해지면 개구리들은 겨우내 잠들었던 굴속에서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아직 몸이 덜 풀린 탓인지 힘없이 폴짝거리며 풀숲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모내기를 할 무렵이면 논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었다. 해가 지고 어둠이 내려앉으면 여기저기서 개구리들이 울기 시작했다. 한두 마리의 울음은 이내 수백 마리의 소리가 되어 들판을 가득 채웠다. 그 합창은 밤을 지나 새벽녘까지 계속되었다. 어린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자연이 매일 밤 들려주던 음악이었다.
그런데 나는 개구리에게 평생 미안한 마음을 품고 살아왔다. 먹을 것이 넉넉하지 않았던 어린 시절, 봄이면 개구리를 잡아 뒷다리를 구워 먹기도 했다. 단백질이 귀하던 시절이었으니 먹고살기 위한 먹이사슬의 한 과정이었다고 핑계를 댈 수도 있을 것이다. 정작 세월이 지나도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놀이 삼아 대나무로 만든 활을 쏘며 개구리를 괴롭혔던 기억이다. 어린아이의 철없는 장난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작은 생명을 함부로 대했던 일이 마음 한구석에 남았다.
생각해 보면 개구리는 참 연약한 생명체다. 날카로운 발톱도 없고, 뿔도 없으며, 자신보다 큰 적과 맞서 싸울 만한 강력한 공격무기도 없다. 위험이 다가오면 풀빛을 닮은 몸으로 자신을 감추거나 긴 뒷다리에 온 힘을 모아 달아난다. 물가에 이르면 풍덩 몸을 던져 물속으로 숨어버린다. 싸워서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아니라 몸을 감추고, 피하고, 기다리며 살아남는다.
그런데 그토록 연약해 보이는 개구리가 오랜 세월 살아남아 수많은 환경에 적응해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놀랍다. 물속에서 올챙이로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다리가 돋고 꼬리가 사라지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다. 물과 땅을 오가며 살아가고, 계절이 바뀌면 몸을 낮추어 때를 기다린다. 강한 무기로 세상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고 환경에 적응하면서 생명을 이어온 것이다.
나이가 들어서야 나는 어린 시절 그렇게 흔하게 보았던 개구리에게 배울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에는 맞서 싸워야 할 때도 있지만 몸을 낮추어야 할 때도 있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도 있지만 잠시 숨어 기다려야 할 때도 있다. 무엇보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반드시 다른 존재를 이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생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자리를 내어주며 함께 존재하는 것 또한 생명의 지혜일 것이다.
그래서 오래된 청개구리 이야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어린 시절 밤마다 나를 잠들게 했던 개구리들의 노랫소리를 기억하면서, 그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마음으로 이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었다. 한때는 너무 흔해서 귀한 줄 몰랐던 생명이 이제는 개발로 연못과 논과 습지가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삶터를 걱정해야 하는 존재가 되었다. 《개구리 연못의 노래》는 어쩌면 어린 시절 내가 함부로 대했던 작은 생명들에게 보내는 아주 늦은 사과인지도 모른다.
이제 개구리 울음소리를 들으면 예전과는 다르게 들린다. 그것은 단순한 울음소리가 아니다. 그곳에 풀과 나무가 살아 있고, 물이 흐르고 있으며, 수많은 작은 생명들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처럼 들린다. 그래서 어린 시절의 개구리에게 이제야 마음속으로 말한다. 미안했다고, 그리고 오랫동안 내 곁에서 노래해 주어 고마웠다고.
개구리가 우리 땅에 산다는 것은 아직 숲이 있고 물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존재 자체가 소중하게 느껴진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생명의 자리는 누구의 것인가
― 《개구리 연못의 노래》를 생태철학의 관점에서 읽다
《개구리 연못의 노래》는 개구리를 보호하자는 환경교육 그림책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이 독자에게 던지는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 땅에서 살아갈 자리는 누구에게 허락되어 있는가?”이다. 인간에게만 있는가, 아니면 개구리와 잠자리와 올챙이와 물고기에게도 있는가. 작품 속 연못은 “물 위와 물속, 흙 아래와 하늘까지” 수많은 생명이 서로 기대어 살아가는 입체적인 세계로 묘사된다. 여기서 자연은 인간을 둘러싼 ‘환경(environment)’이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여러 생명이 함께 구성하는 생명공동체가 된다.
작품의 첫 장이 「일상의 아름다움」인 것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작가는 개발의 위협을 먼저 보여주지 않는다. 개구리 가족이 살아가고, 아이들이 놀고, 학교에 가고, 연못의 생명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을 충분히 보여준다. 생태철학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자연의 가치를 인간에게 얼마나 유용한가로 평가하는 도구적 가치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과정이다. 개구리는 인간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소중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먹고, 놀고,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다음 세대를 낳으며 하나의 세계를 살아간다. 그러므로 그들의 삶은 인간의 평가 이전에 이미 의미를 가진다. 작가가 후기에서 “서로 다른 생명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갈 자리를 내어주며 함께 존재하는 것”을 생명의 지혜라고 말하는 것도 이러한 세계관과 연결된다.
그 평화로운 세계에 불도저가 들어오면서 「존재의 위기」가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작품이 인간을 단순한 악당으로 만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문제의 핵심은 특정 인간의 악의보다 인간의 필요만을 중심에 놓고 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에 있다. 인간에게 연못 주변은 개발 가능한 토지이지만 개구리에게는 집이며, 올챙이에게는 성장의 장소이고, 잠자리에게는 생명주기의 일부이다. 하나의 장소를 바라보는 두 개의 세계가 충돌한다. “우리가 살 곳이 사라지면 어디로 가지?”라는 개구리들의 질문은 그래서 단순한 이주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에게 다른 생명의 터전을 없앨 권리가 있는가라는 생태윤리적 질문이다.
이 작품에서 특히 인상적인 존재는 잠자리다. 잠자리는 연못과 도시를 계속 오간다. 마침내 작품은 “잠자리는 연못과 도시 사이를 아무 경계 없이 날았다. 하늘에서 보면 둘은 하나의 풍경이었다”고 말한다. 이 장면은 작품의 생태철학을 그림책다운 방식으로 압축한다. 도시와 자연을 분리하는 것은 인간의 지도와 소유권과 개발계획이다. 잠자리에게는 그러한 경계가 없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도시도 연못도 하나의 생태적 공간이다. 잠자리는 인간중심적 경계를 넘어서는 시선을 제공하는 무언의 철학자가 된다.
「존재의 용기」에 이르면 작품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개구리들은 더 이상 인간에게 보호받기만 하는 수동적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회의하고, 떠나기도 하고, 기도하기도 하고, 저항하기도 하며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선택한다. 작품을 관통하는 문장인 “싸울 무기는 없어도 떠나지 않을 용기는 있었다”는 이러한 변화를 압축한다. 여기에서 ‘존재의 용기’란 강자가 되어 상대를 정복하는 능력이 아니다. 작고 연약한 존재가 자신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나도 여기에 살아 있다’고 선언하는 힘이다.
흥미롭게도 작품은 폭력적 저항마저 유머러스하게 시험한다. 과격한 개구리들이 돈을 주고 ‘닌자 거북이’를 고용하여 공사장을 공격하지만 실패한다. 이 우스꽝스러운 에피소드는 서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동시에 중요한 철학적 기능을 한다. 작품이 꿈꾸는 생태윤리는 인간과 자연의 힘겨루기에서 자연이 승리하는 세계가 아니다. 인간의 지배를 자연의 지배로 뒤집는 것이 아니라 지배의 논리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때문에 생태 조사관의 등장은 중요하다. “앗! 수원청개구리다. 노랑배 청개구리도 살고 있었네.”라는 발견을 계기로 사태는 달라진다. 앞서 아이가 생물도감을 통해 ‘생태보호종’이라는 개념을 발견했던 작은 독서 장면도 이 순간과 연결된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아는 지식이 자기 존재를 지키는 힘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이름 없는 작은 개구리가 ‘수원청개구리’와 ‘노랑배 청개구리’라는 이름을 얻고, 그 이름이 인간 사회의 제도와 만나면서 생존의 가능성이 열린다.
그러나 《개구리 연못의 노래》의 생태철학이 가장 아름답게 드러나는 곳은 투쟁이 아니라 그 이후이다. 연못을 지켰다고 선언하고 작품을 끝냈다면 환경운동의 승리담이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더 이어간다. 달이 뜨고, 비가 내려 연못이 다시 차오르고, 잠자리가 물 위를 날고,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그리고 연못 건너 도시에도 아침이 온다. 승자는 개구리도 인간도 아니다. 다시 시작된 생명의 순환 자체가 승자다.
이 점에서 마지막 장의 제목 「존재의 축제」는 정확하다. 축제란 모든 존재가 같아지는 상태가 아니다. 수원청개구리는 수원청개구리로, 노랑배 청개구리는 노랑배 청개구리로, 잠자리는 잠자리로, 인간은 인간으로 살아간다. 서로 다른 존재가 서로를 제거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세계를 구성하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이 보여주는 공존이다. 주제곡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 모이면 더 아름다운 노래”라는 구절은 이러한 다성적 생명공동체를 음악적 은유로 표현한다.
그래서 제목의 ‘노래’는 단순한 개구리 울음소리를 넘어선다. 작은 생명이 살아 있다는 신호이며, 자기 존재를 알리는 목소리이고, 서로 다른 생명이 함께 만들어 내는 다성적 세계의 소리다. 작품의 마지막 명제인 “개구리가 우리 땅에 산다는 것은 아직 숲이 있고 물이 있다는 뜻”은 바로 이 생태철학을 압축한다. 개구리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개구리 하나만의 생존을 뜻하지 않는다. 물과 흙과 식물과 곤충과 계절의 순환이 아직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가 된다.
《개구리 연못의 노래》가 궁극적으로 말하는 것은 ‘자연을 사랑하자’는 당위보다 더 근원적이다. 인간은 생명의 세계 밖에서 자연을 관리하는 주인이 아니라, 그 거대한 관계망 안에 잠시 자리를 얻어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라는 것. 그러므로 생태적 삶이란 자연을 인간이 자비롭게 보호하는 행위에 그치지 않는다. 다른 생명에게도 살아갈 자리가 있음을 인정하고 그 자리를 남겨 두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네 장, **「일상의 아름다움―존재의 위기―존재의 용기―존재의 축제」**는 하나의 생태철학적 여정으로 읽힌다. 처음에는 연못이 아름다워서 소중했다. 위기를 겪으면서 연못에 사는 존재들의 권리를 발견했다. 그들은 자기 존재를 지킬 용기를 냈다. 그리고 마침내 독자는 깨닫는다. 생명이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축제였다는 것을.
이 그림책의 가장 깊은 메시지는 그래서 ‘연못을 지켜라’가 아니다.
연못의 자리를 남겨 두어라.
그곳에는 이미 누군가의 세계가 살고 있으므로.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목차
주제곡 〈청개구리의 노래〉
등장인물
1장 일상의 아름다움
연못에서 함께 살아가는 생명들의 평화로운 일상
2장 존재의 위기
개발의 굉음과 함께 찾아온 삶터의 위협
3장 존재의 용기
작은 생명들이 자신의 존재와 삶터를 지켜 내는 이야기
4장 존재의 축제
다시 연못에 울려 퍼지는 생명들의 노래
작가 소개
작가 후기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부가기호 05810: 독자 대상 교양 · 발행 형태 전자출판물 · 내용 분류 문학.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 · 부가기호 뜻은 국립중앙도서관 ISBN 안내 기준
비전출판사에서 2026-09-20에 출간했습니다. ISBN 9788998681302.
이영식 (지은이)입니다. 자세한 저자 소개는 출판사(비전출판사) 제공 자료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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