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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숙 시인의 시에는 오래 숙성된 시간이 잘 갈무리되어 있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는 허황한 포즈도 없으며, 뜸이 덜 든 밥알의 거친 숨소리도 없다. 시인은 차분하고 진지한 사색을 통해 사소한 것들에게서 생의 미묘한 기미를 문득문득 발견해낸다. 썩은 배춧잎을 보고 “배추들에게 장미처럼 가시가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일, 그리하여 “가시의 간격”을 상상하면서 이 세상의 모든 관계를 성찰하는 순간은 예사롭지 않다. 시집을 읽으며 삶을 대하는 깊이를 한 수 배웠다.
안도현(시인, 우석대교수)
모든 시는 결국 자신의 생이 내미는 이름표와도 같은 것이다.
‘늙은 오이의 노래’를 읊조리는 ‘삶의 낮은 자리’에 대한 성찰이
돌연 눈부시다. 사는 일도 또한 별것이 아니어서, 합죽한
입들끼리 나누는 어느 하룻날의 사연이 과연 저럴진대,
그런 대동세상의 ‘나비효과’로 이 시집이 널리 읽혔으면 바래어본다.
정윤천(시인)
전숙 시인은 여성으로서의 운명을 긍정하고 주체성을 지키려고 한다. 그리하여 과거를 회상하거나 그리워하는 데에 함몰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한다. 이리가라이의 세계관처럼 자신의 여성성을 품으며 여성의 족보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맹문재(시인, 안양대교수)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예정도서 등록 정보(출판사 제출)
여성 족보의 시학
― 전숙의 론
맹문재
1
여성들은 흔히 나이 듦에 대해 부정적이다. 성장기의 몇 년을 제외하고 나이가 든다는 사실을 여성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는 것으로, 몸의 기능이 떨어지고 쇠하여 여성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잃는 것으로 여긴다. 그리하여 여성들은 다른 여성들에게 나이를 묻는 것을 결례로 여기는 것은 물론 자신의 나이도 숨긴다.
그렇지만 여성들에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좋지 않은 변화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육체적으로는 성장이 줄어들고 기능이 떨어질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성숙해지는 것이다. 사춘기, 결혼, 임신, 출산, 양육, 갱년기, 노년기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육체적으로는 쇠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이해심, 배려감, 포용력, 연대감, 타협심 등이 더욱 깊어지고 넓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에게 나이가 든다는 사실은 여성으로서의 존재성을 나무의 나이테처럼 키워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성들이 나이 듦에 대해 부정적인 자세를 갖는 것은 주체적인 태도가 아니라 남성들의 가치관에 순응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성들이 정한 여성다움의 기준을 극복하지 못하고 순종하는 것이고, 편견적인 기준에 자신의 본질을 망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들은 나이 듦과 함께 수반되는 정신적인 가치를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이런 차원에서 전숙 시인이 「누비이불」 「알약」 「할매목욕탕」 「미나리꽝에서 순직하다」 「샛골 아짐」 「날개를 볶다」 「딸기를 먹다」 「대물림」 등에서 나이 든 여성들을 품은 것은 주목된다. 감상성을 극복하고 여성성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서 겪는 슬픈 상황을 슬프지 않다고 그리거나 회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힘들거나 안타까운 상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름다움이나 착함이나 온순함만이 여성성을 나타내는 가치는 아니다. 주체적인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대부분 가부장제 남성들의 가치관에 따른 것이기에 여성성을 실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시인이 나이 든 여성들의 슬픔이나 안타까움 등을 담은 것은 순종과 침묵을 강요하는 남성들의 요구에 맞선 행동으로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남성들을 타도하거나 배척하기에 앞서 소외된 여성들을 품고 있으므로 보부아르의 페미니즘과는 차이가 난다. 시인은 여성으로서의 운명을 긍정하고 주체성을 지키려고 한다. 그리하여 과거를 회상하거나 그리워하는 데에 함몰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고 미래를 지향한다. 자신의 여성성을 품으며 여성의 족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2
어젯밤 샛골 아짐이 떠나가셨다.
사인은 심근경색. 방에 들어가 보니 까다 남은 마늘이 종지 가득 다소곳하다. 종지를 치우다보니 칼질당한 마늘머리가 새까맣다. 작은댁이라는 칼날에, 한평생 난도질당했던 아짐의 심장도 저리 까맣게 썩고 말았는가.
주민등본 끝줄에 쭈그려 앉은, 잔뜩 움츠러든 아짐 이름 앞에는 ‘동거인’ 세 글자가 군식구처럼 딸려 있었다. 윗줄에서 튕겨져 나온 손가락과 혓바닥이 독화살을 쏘아대면, 뿌리 없는 아짐의 심장은 대롱거리는 과녁이 되었다. 심장 깊숙이 화살촉이 박힐 때마다 ‘가심에 피’가 틀어 올라 앞가슴을 쥐어뜯던 아짐. 상처의 매운 눈물이 생살을 녹슬게 하고, 녹물에 시름시름 막히던 시간이 지난밤에는 덜컥 멈추었으리라.
독화살도, 주홍글씨도
영원히 지워낸
하얀 여백에서
아짐은 지금쯤
원대로 편안하실까.
― 「샛골 아짐」 전문
“샛골 아짐”이 왜 “동거인”이 되었는지는 작품 자체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 않지만, “작은댁”이라든가 “주민등록 끝줄에 쭈그려 앉은, 잔뜩 움츠러든 아짐 이름”과 같은 문맥으로 보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근대 이전의 한국 사회는 “작은댁”을 만들 만큼 유교주의가 강했던 것이다.
유교주의는 삼강오륜을 사회도덕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데, 평등한 관계가 아니라 종속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에 여성들에게는 불리하다. 여성성을 실현하기 위한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이다. 가령 삼강 중 한 가지인 부위부강(夫爲婦綱)은 남편과 아내 사이에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는 것이지만, 평등한 관계를 형성하지 않는다. 남편이 아내를 벼린다(綱)는 것은 남편이 아내를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곧 임금이 신하를 다스리거나(君爲臣綱), 아버지가 자식을 다스리는 것(父爲子綱)과 같은 이치이다. 물론 임금이 신하를 다스리고 아버지가 자식을 다스리는 것이 억압이나 유린이 아니라 보살핌을 전제하는 것이지만, 대등한 관계가 아니기에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평등이나 자유보다도 충성과 효도와 순종을, 개인보다도 전체를 지향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절대적인 왕권과 가부장적인 부권과 남존여비적인 부권(夫權)이 사회의 이데올로기로 정착된 것이다. 이렇듯 삼강오륜은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한 면도 있지만, 남녀차별 같은 봉건적 신분 질서를 공고히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샛골 아짐”이 “동거인”이 되고 “작은댁”이 된 것도 그 산물이다.
“샛골 아짐”은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삶을 영위하지 못했다. 부위부강 혹은 부부유별의 유교주의가 지배한 사회의 관습에 따라 한 남성에 종속된 삶을 살았다. 한 남성의 족보를 채워주는 존재자로, 가령 아이를 낳아주는 존재자로 운명의 길을 걸어간 것이다. 여성이 아이를 낳는 일만큼 위대한 것도 없지만,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유교주의 사회에서는 내세울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창조물인데도 불구하고 아이에 대한 권리가 남편 혹은 집안 어른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여성은 양육이나 책임지는 존재자로 전락했다. 그리하여 “샛골 아짐” 역시 집안의 중요한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존재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단지 남편을 받드는 한 여자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시인은 “샛골 아짐”의 그와 같은 운명을 품고 있다. 음지 같은 여성의 삶을 재조명해서 여성성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 방법으로 남성들에 의해 비하된 육체성을 오히려 내세운다. 여성들의 육체는 결코 비하될 대상이 아니라고, 여성성을 인식하는 토대라고 부각시키는 것이다.
암컷들은 아무리 가난해도
몸속 은밀한 곳에 주머니 하나씩 숨겨둔다고 한다
암컷들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것들은
주머니 속에 알콩알콩 쌓여 젖별이 된다
주머니를 뒤집어보면
은하수 같은 만경창파에 빨대들이 빼곡히 꽂혀 있다
빨대 끝에는 실팍한 젖별들이 남실거리고
초승달 같은 어린 주둥이들이 찰싹 달라붙어 있다
오목오목 물 당기는 소리
꼴딱꼴딱 논밭 적시는 소리
아름답다
오랜 가뭄 끝의 저수지바닥처럼
생살이 다 타버릴 때까지
주머니는 제게 남은 젖별을 아낌없이 흘려보낸다
암소를 잡던 날 알았다
주머니를 들어내니
암소의 살집은 몇 점 발라낼 것도 없이 초췌하였다
누군가 말했다
암놈은 주머니 빼면 허방이여.
― 「소 잡는 날」 전문
“암놈”의 몸은 생명체를 잉태하고 성장하도록 이끌어주는 특수한 존재이다. “암컷들은 아무리 가난해도/몸속 은밀한 곳에 주머니 하나씩 숨겨”두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생명체가 자신의 몸속에서 병이 나지 않고 잘 자라나도록 최대한 보살핀다. 몸 안에 있는 생명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살집은 몇 점 발라낼 것도 없이 초췌하”게 되는 것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 생명체를 품는다는 것은 대상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한다는 의미이다. 남성들은 “우리는 구분하지, 범벅인 건 질색이야, 라고” 말하지만, 여성들은 “가여운 콩쥐의 유령이 엄마…… 하고 내 치마폭을 파고들”면 “오냐 내 새끼 내가 너를 살려내마”(김정란,「여자의 말- 존재의 내장 속으로」)라고 끌어안는다. 남성들은 자신만의 기준으로 타자를 선택하거나 배제하지만, 여성들은 최대한 타자와의 차이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타자를 끌어안고 성장시킨다.
그렇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의 정신은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남성들은 여전히 여성들을 육체적인 대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여성들을 정신적으로 고상하거나 가치가 높은 주체가 아니라, 미용이나 화장이나 의복에만 관심을 갖는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자식으로서 부모에 효를 다하고, 아내로서 남편에 본분을 다하고, 어른으로서 자식에게 책임을 다하는 여성의 정신은 인간다움을 실현시키는 기제가 되지만 몸은 그렇지 못하다고, 심지어 경계하고 조절해야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를 ‘몸 팔다’라는 말에서 볼 수 있다. 육체노동을 극단적으로 비하시킨 이 말은 남성들보다도 여성들의 경우에 더욱 적용된다. 여성들에게는 육체노동을 의미하는 정도를 넘어 비도덕적이고 비정상적인 행위로 간주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떻게 남성들의 편견이나 왜곡을 극복할 수 있을까?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해 남성들과 대등한 조건을 마련할 수 있을까? 전숙 시인은 그 방안으로 여성들의 연대감을 제시하고 있다.
3
어미의 심장이 열매가 되었다
중심을 열어보면 기도하는
모성이 촛불처럼 타오르고
외로운 아기별
희디흰 젖줄을 꼭지연처럼 물고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불붙는 일
여성을 포기하고
모성의 길에 들어선
아, 그녀는 수려한 얼굴에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촘촘히 찍혀있는 마마자국
보름달처럼 드러내놓고
허기진 눈물들을 위해
흉터마다 씨앗 같은 기다림이 박혀 있다
먼데로 자식 떠나보낸
향기 없어도 향기로운
어미의 마음이 달게 익었다
― 「딸기를 먹다」 전문
여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불붙는 일”이다. 시인은 “여성을 포기하고/모성의 길에 들어선” “어미”들까지 품는 마음이야말로 여성성을 지향하는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결국 “촛불”을 밝혀 여성의 족보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리가라이는 한 예화를 통해 그와 같은 행동을 강조하고 있다. “딸이 결혼할 때, 어머니는 집에서 횃불을 밝혀, 젊은 신랑 신부에 앞서, 새로 살림할 집으로 옮긴다. 그렇게 함으로써 어머니는 딸의 집에 처음으로 붉을 밝힌 사람이 된다. 불은 여성이 순결을 지킨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여기에서 순결이란 세속적인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방어적이고 수줍음을 타는 처녀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여성의 정체성과 여성의 족보에 충실함을 의미한다.” “When a daughter marries, the mother lights a torch at the altar of her own hearth, and, preceding the you couple, she carries it to their new residence. She thus lights the first fire of her daughter's domestic altar. The fire stands for the fact that the woman is the guardian of purity. Purity here does not signify defensive or prudish virginity, as some of our profane contemporaries might take it to mean, nor does it signify an allegiance to patriarchal culture and its definition of virginity as an exchange value between men; it signifies the woman's fidelity to her identity and female genealogy.” Luce Irigaray, Je, Tu, Nous, Editions Grasset & Fasquelle, 1990, pp.10~11.
여성이 불을 밝히는 행동은 모녀가 함께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 신성함을 지향하는 것이다. 지향이란 한 장소에 머무르지 않고 나아감이다. 마치 나사가 온몸으로 뚫고 들어가는 것과 같이 의지를 품고 전진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인이 불붙이는 행동은 이름표를 다는 데에 안주하지 않고 무한한 도전성을 띠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소멸될 운명조차 두려워하지 않고 “촛불처럼 타오르”는 것이다.
스물두 살에 시집온 어머니를 따라
실밥 터진 숲길을 걸어 들어간다
잔가지가 찢긴 수(壽) 자와 복(福) 자는
아직도 신혼인 양 속정이 살갑다
접이접이 추억이 포개진 길
말끔하게 지워내면 가벼워질까
내 갓 난 시절에 어머니가 그리하셨듯이
내 품에 가볍게 안기셨던 팔순의 여윈 몸
서리서리 개켜진 정한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제1부: 동틀 무렵
제2부: 풍경
제3부: 안과 밖
제4부: 사랑이 향기를 만든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부가기호 05810: 독자 대상 교양 · 발행 형태 전자출판물 · 내용 분류 문학.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 · 부가기호 뜻은 국립중앙도서관 ISBN 안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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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시와사람에서 2026-09-15 출간 예정으로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에 출간예정으로 등록됐던 도서입니다. 실제 출간·판매 여부는 서점에서 ISBN 9788956658629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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