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의 발달』는 2026-10-28 출간 예정입니다. 출간되면 서점 판매 링크와 함께 이메일로 한 번 알려드립니다.
물안개가 자욱하게 아침을 적시는 강가를 걷는다.
안개가 품어 안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강물의 흐름을 휘감아 피어오르는 희뿌연 드레스 자락 너머로 감겨든 이야기는 어떤 걸까. 손 내저어 잡으려면 멀어지기만 하는 그것, 나래짓하는 말 없음이 슬픔일지 아니면 풀어 펼치고 싶어하는 기쁨인지 쉽사리 가늠이 되지 않는다.
옹달샘을 출발해서 도랑물로 냇물로 달려온 숨가뿜, 언제 그랬냐는 듯 흐름은 멈춰진 것 같아 보인다. 어쩌면 그 크고 깊다란 숨김에 기대고 싶어진 사람들 서성대고, 그러다 보니 지난 밤엔 엇나간 뜻을 어디다 쏟지를데 조차 없어 하는 박서방이 강둑 푸서리에 두다리 뻗은 채 메인 목으로 가슴만 두드리고 있었던 걸 거다.
갈밭에선 부는 바람에 가는 허리를 살랑이는 갈대들이 지들 끼리 비벼대며 서걱거리는 수다 보따리가 참 따숩게 녹아내리고, 시공을 되잡아 보면 삼밭개 주막 주모와의 하룻밤을 둔 채 떠나온 뗏배 사공의 땀내 절은 뱃노래는 아우라지를 바라며 거슬러 오르고 있었다.
강물을 보면 자꾸만 지껄이고 싶어진다. 무슨 말을 해도 다른 낯색 비추는 일없이 모두 받아줄 것 만 같다. 그 어느 것 하나 내치는 일없이 보고 듣고, 품안에 녹여 흐르는 강물이기에 그렇다.
풋풋하던 날들 끝내 꺼내보지 못했던 사랑의 말 한마디며, 한 순간에 무너지던 선택받지 못한 낙방의 쓰디씀 그리고 결코 하기 싫었던 결별의 순간까지를 말이다.
오늘 이 강가에 서서 내 밷지 못한 채, 안으로 안으로만 우겨넣고 삭힘질 하던 기쁨을, 슬픔을 강에다 대고 소리치고 싶다. 그리고 그것들을 글로 쓸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예정도서 등록 정보(출판사 제출)
서평]
순간 속에서 존재를 찾는 사설辭說의 힘
나호열 _ 시인 ․ 문화평론가
돌아가는 길을 잊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제야 나는 숲이 되었다
- 「몽환의 길로 걸어들어가면」
1.
1917년 프랑스 화가인 마르셀 뒤샹은 남성용 소변기를 떼어내어 ‘샘’이라 명명한 뒤 미술 전시회에 출품했다. 화장실의 소변기가 전시회장으로 이동했을 때 고착화된 소변기의 용도는 폐기되고 ‘샘’이라는 새로운 의미로 전화轉化되었다. 뒤샹은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개념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모든 예술은 나름의 틀(형식)을 가지고 있으며 그 안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를 궁구하기 마련인데 한 걸음 더 나아가 틀 자체를 분쇄하려는 시도가 새로운 예술의 혁명(창조)을 일으킨다는 점을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백 편이 넘는 시를 수록한 시집 연둣빛의 발달의 많은 시들이 우리가 쉽게 받아들이고 있는 시의 틀과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산문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문시라고 정의하기에도 모호한 장시長詩의 형태는 생략과 압축이 시의 본질이라는 관념과 맞선다. 그래서 어느 사람은 당혹감을 느끼고 이 시집을 덮어버릴지도 모르고, 또 어느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시에 등장하는 여러 존재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음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정밀한 언어의 축조로 빚어지는 사유의 여백을 음미하기에는 시 속에 드러나는 이야기는 산문에 어울릴 듯 싶은데, 시의 전개 양상은 그 행보行步가 경쾌하여 읽는 재미를 선사해주기도 한다. 어쨌든 고정된 시의 틀을 벗어나는 일에 있어서 반드시 그래야만 하는 필연적 논리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시와 시인의 위의威儀는 설 자리를 잃게 됨은 자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시집 연둣빛의 발달에 펼쳐진 많은 시들이 장시의 형식을 가져야만 하는 필연성을 내재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시 한 편을 읽어보자. 눈으로 읽지 말고 나지막이 소리내어 읽어보자.
지금은 그렇지, 웃어야 할 때 같다
아니지 아니야 울어야 할 것 같아
여간만 헷갈리는 게 아니어서 거울을 볼 틈도 별로 없다
햇빛이며 바람들의 요구사항이 너무 다양하고, 어디 그뿐이랴
나와 다르게 생각하며 시키는 대로 하라는 현장 스태프들도 여럿이다
내가 하는 얼굴 보여주기는 다분히 즉흥적이다
이걸 연기하는 것이라고 보면 미리 주어진 대본대로가 아니어서
그때 그때 던져주는 쪽대본의 생경 맞음에
어떤 얼굴을 보여야 할지 허둥댈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갓 솜타기한 햇솜 뭉치처럼 모처럼 하얗게 웃는 여름 한낮
얼굴 가득히 티 없는 웃음이 뭉게 뭉게 피어오른다
이걸 보면서 그늘 짙은 마음이 되는 사람도 있을까
하지만 그것도 긴 대목이 아니다
주위에선 그냥 느긋이 바라만 보고 있질 않는다
만개한 웃음을 흩은 뒤 삽시간에 휩쓸어가는 것은
난폭하게 손을 휘젓는 바람이다
뿌리칠 겨를을 마련할 새도 없이
바람이 실어와선 내게 안겨준 물주머니
무겁기도 하지만 질척거리는 느낌이 너무 싫다
오만상을 찌푸릴 수밖에
어디 그뿐이랴 내 하는 연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소리 지르는 천둥번개라니
이럴 땐 목 놓아 우는 수밖에 없다
눈물을 동이 동이 쏟으면서
그래도 서녘으로 지는 해가 흠씬 젖은 내 마음을 다독거려 주고
그러면 어쩔 수도 없이 내 얼굴이 새빨갛게 물드는 걸
- 「구름의 표정 연기」 전문
이 시는 화자話者인 구름이 하는 말인데, 소리 내어 읽어보면 어느새 내가 구름이 된 듯하고,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구름이 되는 동화童話의 즐거움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최초의 시는 노래였는데 알게 모르게 사라져버린 낭독의 기능을 시인은 사설辭說로 풀어내는 솜씨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사전에서 사설은 1.길게 늘어놓는 잔소리나 푸념 2. 판소리에서 소리와 소리 사이에 가락을 붙이지 않고 이야기하듯 줄거리를 설명하는 부분 3. 판소리나 노래 따위의 가사로 정의되어 있다. 오늘날 우리의 현대시가 부딪치고 있는 난관의 하나가 노래의 기능이 사라지고 분석을 통해 시의 요의를 파악해야 함에 따라 일반 독자들이 쉽게 시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점을 간파한 시인은 단순히 감정의 나열로 이야기를 늘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설로 한 편의 시가 함의하는 바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을 놓쳐서는 안될 것이다.
2.
잠시 우려했던 장시의 형태가 치밀한 시작법의 일환으로서 사설의 기법을 취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시인이 구현하고자 하는 주체와 주제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된다. 시인은 시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묻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명제가 시인이 해명하고자 하는 숙제이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존재의 양상을 탐구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시인의 과업이다.
그의 공장은 쉬는 일이 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컨베이어 벨트 위를 끊임없이 오고 가는
‘지금’이라는 아주 잠간의 반짝임들, 그 조각들이 모여선
오늘이 되고 내일을 열며, 어제로 남는다
- 「크로노스의 공장에선」 1, 2 연
크로노스(Khronos)는 우라노스(하늘)와 가이아(땅)의 아들로서 이른바 시간時間의 신 이다. 이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 모든 존재는 소멸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에 대비되는 카이로스(Kairos)는 의미가 부여된 시간의 개념으로서 존재가 영속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열 살 때의 나와 70이 넘은 나를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까닭은 변하지 않는 나의 본질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제품창고에는 어떻게도 헤아릴 수는 없는 ‘잠깐’들이 /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쌓여 있다’(「크로노스의 공장에선」 9연)는 존재의 의미를 명확히 시간 속에서 찾는 시인이 통찰은 빛이 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카이로스의 시간을 근거로 시인은 모든 사물과 현상에 생명을 불어놓고 존재의 의미를 규명하고자 한다. 따라서 시인의 렌즈 안에 들어오는 사물이나 현상 심지어 관념까지도 새로운 각성覺醒으로 포착되는데, 이는 시인의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음을 뜻한다.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나무줄기든 땅속이든 간에
내가 걷는 길이 온 세계다
내 삶살이
보이는 것이 생각하는 것 아는 것의 전부다
보이지 않는 것은 생각하거나 알고 싶지도 않아
어쩌다 바깥세상 나들이라도 할라치면
데어 벗어질 듯 뜨겁고 부신 햇빛에 눈까지 아린데
빗방울 떨어지면 해일이 일고
지는 나뭇잎 한 장도 네이팜탄이 되어 그때마다 자지러지게 놀라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일어나 가던 길을 간다
그 길 밖엔 모르는 걸 어떡해
곰곰 헤아려 봐도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다
집으로 가는 이 길은 별보다도 멀다
내 걸음은 비행기보다도 빠르다
내가 물고 가는 이 먹이덩어리는 지구보다도 크다
그래서 오늘도 바깥 길 위로 나선다
내 깐에는 힘을 다해 소리 지르면서
다른 누가 뭐라고 하든, 듣던 말든
- 「트리발의 우주」 전문
주석에 따르면 ‘트리발(trivale)은 집개미의 일종으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개미로서 육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이며 주로 나무속이나 땅속에 강한 생존력으로 서식하면서 생태 순환 역할을 한다’고 되어 있다. 모든 존재는 크고 작음, 많고 적음, 좋고 나쁨의 상식적 의미망을 벗어나 인드라망의 구조 속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고 있으며, 이런 세계관이 일으키는 사랑이 소중함을 일깨워줌을 시인은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예중하는 많은 시들을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바람, 눈, 들꽃, 갈대, 운모, 돌단풍, 섬광, 볕뉘, 황태와 같은 사물이나 현상의 본질을 탐구하거나, 망각, 울음, 풋감의 떫은 맛과 같은 감각까지도 시로 품어내는 솜씨는 그 어떤 묘사보다도 강력한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 반어와, 역설, 풍자와 같은 비유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살 속에 숨어 있는 뼈와 같이 시의 주제를 명료하게 만드는 공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자연 현상을 묘사한 시
바람,
너는 돛배에게 펼쳐진 힘이며
인간에겐 벅차게 부푼 희망일 거야
- 「바람 바람」 부분
눈 소리는 귀가 아니라 가슴으로 들어야 한다
눈이 제 소리를 입이 아니라
가슴으로 속삭이기에
- 「가슴으로 듣는 눈 소리」 부분
밤하늘 가득한 별들이
빛남의 반짝임으로
부서져 내려앉은 것일 수도 있겠다
…(중략)…
상고대는 보이지 않는 기다림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5 강을 읽어 보는 아침
연둣빛의 발달
13 연둣빛의 발달
15 비의 이력
17 채석강에서
19 비운 뒤에라야
21 연둣빛의 발달
23 인간이 된 신의 눈물
26 햇빛 읽기
28 하얀 등대
30 젖은 눈빛으로
32 좀처럼 가늠이 안 되는
34 상고대
36 산 도랑을 흐르는 언 숨
38 빛그늘
40 빛밝음의 싹눈
42 스쳐 지나는 생각들
44 시간의 두 얼굴
46 스킨십 충전소
48 양파를 벗기며
50 얼음의 소리
52 온도차의 얼굴
54 운모
56 이르든 늦든
59 이인삼각
61 울음에 대한 몇 가지 생각
63 혼자라는 걸 알았을 때
66 흐르는 산그늘에 앉아서
68 트리발의 우주
70 출발점
72 절구를 보며-시어미 얼굴
74 크로노스의 공장에선
77 풋감의 떫은맛
79 겨울밤 이상한 꿈
81 혼자 있어도 혼자가 아닌
83 유빙의 푸념
86 여름 동화
88 섬광
90 새 내의 입기
93 인간을 위한 신의 기도
96 아니 웃고 어이하리
99 칠야漆夜의 신륵사 말
103 성엣장
105 감나무 편지
108 빈가지, 지는 잎새에게 묻다
110 초연
112 사과의 익음을 베어 물며
114 잔광殘光
116 수종사
구름의 표정 연기
121 봄빛의 얼굴은
123 몽환夢幻의 숲으로 걸어 들어가면
126 변신을 위한 황태의 생각
128 매화무늬 사기 술병
130 던져진 한 점
132 동행이 끝날 때
134 돌단풍이 사는 바위
136 돈
138 망각忘却
140 떠들고 싶어진 가로등
143 되새김질 중인 갈대
145 강이 보이는 창가에
147 2월 허수아비
149 눈이 내리면
151 끝내 알 수는 없는
154 남한 산성
156 나는 안다 이 녀석아
158 넥타이의 변
161 내 그림자밟기
163 매미의 울음
165 마시고 또 마시자
167 다시 사는 붕어
169 눈이 하는 말과 짓거리
171 걸음새 따라 담기는 것들
173 구름의 표정 연기
175 명치
177 내 몸 돌보기가
179 볕 뉘
181 보고 말하는 가슴
183 부르는 소리
186 우리 둘 하나되어
188 봄이 오고 있어
190 개미들만의 우주
191 들꽃처럼 산다면
193 바람 바람
196 바디 랭귀지
198 물에서 사는 바위
200 물 비침이 바람에 흔들려도
202 가슴으로 듣는 눈 소리
204 별스러운 사람들의 별의 별 소리들을
208 별을 보며 갖는 몇 가지 상념
210 바람 속의 겨울 산
212 마을 쓰레기장에서 꾸는 꿈들
214 바다로 가는 옹달샘
216 꽃을 보면서
218 나목裸木의 잎 새 하나
220 [서평] 순간 속에서 존재를 찾는 사설辭說의 힘-나호열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부가기호 03800: 독자 대상 교양 · 발행 형태 단행본 · 내용 분류 문학.
분량·판형: 235쪽 · 판형 155*225.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 · 부가기호 뜻은 국립중앙도서관 ISBN 안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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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일문화사에서 2026-10-28 출간 예정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 기준). ISBN 9791186432792.
이병준 / 효일문화사. 출간 후 상세 정보가 갱신됩니다.
종이책으로 출간 예정입니다. 분량은 235쪽입니다. 정가는 21,000원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예정도서 등록 기준이며, 별도 판형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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