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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양한흠 효행 관련 문서」는 조선시대 후기 지방사회의 효행 인식과 유교 윤리의 실천 양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지역사회 여론과 행정기관의 조사 과정을 함께 확인할 수 있어 향촌사회 운영과 지방행정 연구의 중요한 사료이다. 그리고 효행을 개인이나 종중의 덕목을 넘어 134명의 선비들이 참여할만큼 공동체가 공유하고 계승해야 할 사회적 가치로 인식하였음을 보여준다. 이 문서는 효행 설화와 유교적 실천, 지역 공동체의 가치관이 결합된 사례로서 전통 윤리문화 연구에 활용 가치가 높다. 또한 동임의 보고인 서목, 사림의 동의를 구하는 향교의 통문, 현감과 순찰사·암행어사에게 청원한 상서 등 여러 단계의 문서가 함께 전하고 있다. 특정 지역 한 인물의 효행이 공적 기록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복원할 수 있어 효행 포상 제도, 지방행정사, 향촌사회사, 유교문화사, 기록문화 연구에 있어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있다. - 〈해제〉 -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예정도서 등록 정보(출판사 제출)
해제 解題
강진 「대구 양한흠 효행관련 문서」 해제
김 희 태
(전 전라남도 문화재 전문위원)
1. 머리말
「대구 양한흠 효행관련 문서(大口 梁翰欽 孝行關聯 文書)」는 양한흠의 효행 포상에 관련된 서목 1점, 소지류 문서 7점, 통문 1점, 그리고 강진현감이 내린 차첩 2점이다. 강진군 대구면 수동길13 남원양씨가에 소장된 문서로 2020년 6월 19일 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제65호로 지정되었다. 소장 문서는 12점인데 11점이 지정문서에 포함되었다. 현재 관리인은 양치중회장(梁致仲, 1939년생) 회장으로 양한흠선생(이하 인명 경칭 생략)의 증손이다.
양한흠(梁翰欽, 1848.09.18.~1904.01.27.)이 살았던 전라도 강진현 대구면 석수동은 지금의 대구면 수동리 수동마을로, 효행문서에서는 ‘석수동(錫壽洞)’으로 표기되었다. 이 문서보다 앞선 시기의 관찬자료인 『호구총수(戶口總數)』(1789년) 강진 대구면 조에는 ‘석수동(錫壽洞)’, 「강진현지도」(1872년)에는 ‘석수동(石水洞)’으로 표기가 나온다. 1912년 자료에는 ‘수동(水洞)’으로 표기되었다. 1914년에 대구면 수동리로 합해졌다. ‘석수골’로도 부른다. 남원양씨의 강진 입향조는 병부공 18세 양순(梁舜)이고, 대구 입향조는 26세 양주경(梁柱景)이다. 1995년 자료에 따르면 수동리 114가구 중 남원양씨는 10가구였다.
조선후기 대구면 석수동 부근도(「강진현지도」, 1872년, 규장각 소장)(상하 반전)
대구면 수동리 수동마을 전경(사진 마동욱작가)
양한흠(1848~1904)은 남원양씨로 병부공파(諱 能讓) 30세손이며 눌재(訥齋) 양성지(梁誠之, 1415~1482)의 17세손이다. 대동보에는 이름이 한석(翰錫), 초휘(初諱)는 한흠(翰欽), 자(字)는 종화(宗化)로 올라 있다. 조부는 양득환(梁得煥, 1802~1868, 字 士玄), 부친은 양기원(梁基元, 1827~1882, 初諱 基德, 족보명 在德, 자 君西), 모친은 여주민씨(驪州閔氏, 1828~1892)이다.
강진 대구면 석수동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났다. 부친이 6~7년간 중병을 앓자 의원과 약을 구하고, 칠성단을 쌓아 한겨울에도 목욕재계하며 자신의 목숨을 대신 바칠 것을 기원하였다. 병에 좋다는 구렁이와 뱀, 꿩까지 구해 정성껏 봉양하였으며, 결국 부친의 병이 회복되자 사람들은 그의 효성이 하늘을 감동시킨 결과라며 크게 칭송하였다. 대동보에는 “성효출천 누각향도천 제동교(誠孝出天 累刻鄕道薦 除童敎)”라 기록하였다. 성심을 다한 효행은 타고 난 것이고 여러차례 고을과 도의 추천이 있었고 동몽교관에 제수되었는 내용이다.
이같은 양한흠의 효행은 널리 알려져 포상을 하고 정려를 세워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는 향론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생산된 1869년(고종 6)에서 1879년(고종 16) 사이에 양한흠 효행 포상 사실을 석수동 동임이 강진현감에게 보고한 서목(書目) 1점, 효행 포상을 강진현감, 전라도순찰사(관찰사), 암행어사에게 청원한 상서(上書) 7점, 포상 청원에 동의하는 전주향교의 답통문(通文) 1점이다. 그리고 1861년(철종 12)과 1862년(철종 13) 여제(厲祭) 봉향 제관 임명 차첩(差帖) 2점이다. 문서의 종류별로 개략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고문서와 관련된 시기의 강진현감 등의 재임시 행적 일부를 주석으로 소개하였다. 시대사정과 지역사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어서이다.
2. 효행 사실 보고, 서목(書目)
「대구 양한흠 효행관련 문서」 가운데 서목(書目) 1점이 있다. 이 서목은, 거주지인 석수동의 동임이 강진현감에게 양한흠의 효행사실을 알리면서 포상이 필요하다는 보고 문서이다. 1869년 4월 22일 보고했고 당시 동임은 윤(尹)씨이다.
서목(書目)은 조선시대 관부(官府)에서 사용하는 문서양식인데, 하급관리가 상관에게 일정한 사항을 보고하거나 질문[質稟] 또는 청원(請願)하는 문서이다. 서목을 받은 상관은 서목의 여백에 원장에 대한 처분[제음]을 쓴 뒤 서목을 올린 하관에게 돌려주게 된다. 하관은 서목에 써있는 상관의 처분대로 시행하게 된다. 양한흠 관련 서목은 이서(吏胥)나 향임(鄕任)이 수령에게 보고한 문서에 해당한다. 갑오개혁 이후에 ‘보고서’라 하였다.
[문서1] 1869년 기사년 석수동 동임서목[己巳年 錫壽洞 洞任書目]
1869년(고종 6) 4월 22일에 양한흠의 효행 사실을 석수동 동임이 강진현감에게 보고하면서 조정에 포상 청원을 해 달라는 내용이다. 양한흠은 남원양씨이며 눌재 양성지(訥齋 梁誠之, 1414~1482)의 14대 손이다. 어려서부터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였으며, 오랜 병으로 위독한 부친을 위해 의원과 약을 구하고 칠성단을 쌓아 매일 밤 목욕재계하며 자신의 목숨으로 대신하기를 기원하였다. 병에 좋다는 구렁이와 꽃뱀을 구해 약으로 쓰고, 직접 약을 먼저 맛본 뒤 올렸으며, 부친이 원하는 꿩고기를 구하려 온 힘을 다하였다. 이러한 정성으로 부친의 병이 회복되자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의 효성에 감복하였고, 동임은 강진현감에게 보고하면서 이를 널리 알려 효를 장려하는 본보기로 삼아 조정의 포상을 청원한 것이다. 강진현감의 제음은 서목의 여백이 없어서인지 본문 위에 썼다. “부모를 지극한 정성으로 섬기는 효행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다. 그 행실이 매우 아름다워 칭찬할 만하니, 더욱 공정한 공의를 거쳐 그 사실을 조속히 밝혀 드러내고 선양하는 것이 마땅하다.”라 하였다. 당시 강진현감은 이종서(李鍾緖, 무과, 함풍인)로 1867년 6월부터 1872년 5월까지 재임하였다.
3. 효행 포상 청원, 상서(上書)
양한흠 효행관련 문서는 상서(上書)가 7건이다. 상서는 소지류(所志類) 문서에 포함된다. 소지류 문서는 백성 개인이나 단체가 관아의 결정과 도움을 통해 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수령ㆍ관찰사ㆍ암행어사 등에게 올리는 소송(訴訟), 청원(請願), 진정(陳情) 따위의 성격을 띤 문서를 말한다. 상서(上書), 원정(原情), 의송(議送), 등장(等狀), 발괄[白活], 소지(所志), 단자(單子) 등이 해당된다. 소지를 작성하는 작성자의 범위는 사서인(士庶人), 노비, 여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선비와 이서가 사용하던 서식집 『유서필지(儒胥必知)』에는 소지, 발괄, 단자, 의송 등을 설명하였다.
소지류의 문서는 억울하거나 어려운 상황, 충효열 관련 포상 등이 필요한 사항을 작성하여 수령이나 관찰사 등의 관부에 올리면 해당 관원은 문서를 살펴본 뒤 그에 대한 판결문인 제음(뎨김, 題音)ㆍ제사(題辭)를 소지류 문서 여백 또는 뒷면에 작성하여 되돌려주었다. 수령일 때는 제음[뎨김, 題音]이라 하고 관찰사일 때는 제사(題辭)라고 부른다. 작성자는 개인이든 단체든 이 제음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법률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었다. 때문에 한 문서에 민원을 올린 이의 내용 및 관원의 판결 내용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민원을 올린 이는 소자(小字)의 해서체 또는 행서체로 작성한 반면, 관찰사ㆍ수령 등의 판결은 대자(大字)의 초서체로 작성하여 상하 관계를 분명히 하였다.
소지류의 형식은, 문서의 시작 부분에 해당하는 시면에는 작성자의 거주지와 관직명,성명을 기재한다. 다음 행에는 기두어와 소지를 작성한 연유[云云]를 기재한다. 문서 본문의 마지막에는 결사를 적고 처분을 바라는 대상의 존함을 기재한다. 이후 작성일과 문서명을 기재하여 관련인이 소재한 관청에 제출한다. 그 뒤의 구성요소들은 관청에서 작성하여 주는 것이며, 관에서는 판관의 착압과 판결문인 제음, 판결일을 적고 관인을 찍게 된다.
[문서2] 1869년 기사년 대구면 다사 상서(소지)[己巳年 大口面 多士 上書(所志)]
1869년(고종 6) 5월 29일에 대구면의 유학 조석관(曹錫寬), 윤후헌(尹厚憲), 이정각(李廷珏) 등 지역 선비들이 강진현감[이종서]에게 올린 양한흠의 효행 포상 청원 상서(上書)이다. 양한흠의 효행 사실은 [문서1]의 내용과 같은데, 사림들은 이러한 행실이 왕상의 빙리와 황작 고사에 견줄 만한 효성이라 평가하고, 가난하여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효행을 조정에 보고하여 포창함으로써 효를 권장하고 풍속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연명자는 유학(幼學) 윤세열(尹世說), 조계승(曺啓承), 이종선(李宗善), 윤귀헌(尹貴憲), 조병길(曺秉吉), 이정창(李廷昌), 김달혁(金達爀), 홍성종(洪聖鍾), 공태화(孔泰華), 고낙진(高洛鎭), 조형하(曺亨夏), 송만수(宋萬守) 등 11명인데. 시면의 3인을 포함하면 14인이다. 강진현감의 제음을 요약하면 “효행은 이미 향리의 보고로 알려졌으며, 그 정성이 가상하여 칭찬할 만하다. 다만 선양은 공론을 기다려 시행할 일이다.”는 내용이다.
[문서3] 1869년 기사년 경내 다사 상서[己巳年 境內 多士 上書]
1869년(고종 6) 7월에 강진현 경내 선비 오수인(吳樹仁), 이방휘(李芳輝), 박현수(朴玄洙) 등이 강진현감[이종서]에게 양한흠의 효행 포상을 조정에 천거하기 위해 올린 연명 상서이다. 양한흠의 효행을 출천지효(出天之孝)로 높이 평가하고, 이러한 선행을 국가가 포창하여 효를 권장하고 아름다운 풍속을 진작해야 한다고 청원하였다. 연명자는 김달환(金達煥), 윤창영(尹彰榮), 오채진(吳采鎭), 조병길(曺秉吉), 안국철(安國喆), 김재헌(金載憲), 김봉일(金鳳一), 윤석언(尹錫彦), 오삼환(吳三煥), 윤세열(尹世說), 이성하(李盛夏), 조인철(趙寅喆), 최기석(崔基錫), 김석환(金錫煥), 김선흥(金善興), 한달겸(韓達謙), 김달삼(金達三), 윤효헌(尹孝憲), 김재련(金財連) 등 22명이다. 현감의 제음을 간추리면 “효행은 높이 칭찬할 일이지만, 공식적인 포상이나 표창은 더욱 신중하게 공론을 거친 뒤 결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초5일에 처분하였다.
[문서4] 1869년 기사년 도내 유생 상서[己巳年 道內 儒生 上書]
1869년(고종 6) 9월에 전라도 도내 선비 박기인(朴奇仁) 등이 순상(순찰사, 전라도관찰사)에게 “임금께 보고하여 정문 표창해 주도록” 청원한 상서이다. 연명인은 유학(幼學) 박기인(朴奇仁), 유일환(柳一煥), 송지영(宋止榮), 이봉일(李鳳一), 송지호(宋止浩), 이장환(李章煥), 라택진(羅宅鎭), 림기봉(林基鳳), 김재헌(金在憲), 김득성(金得聲), 서명훈(徐明勳), 류지호(柳志浩), 이보영(李寶榮), 박주석(朴柱奭), 김수환(金壽煥), 오천진(吳天晉), 최철홍(崔哲弘) 등 17명이다. 순상의 제음은 “보통보다 뛰어난 효행은 극히 가상하고 칭찬할 만하다. 표창하고 전례를 세우는 일은 공의를 기다려 할 일”이라는 내용이다. 28일에 처분하였다. 순상은 전라도관찰사가 순찰하는 것을 말한다. 당시 전라도관찰사는 서상정(徐相鼎, 1813~1876)으로 1866년(고종 3) 11월부터 1870년(고종 7) 1월까지 재임하였다.
[문서6] 1874년 갑술년 경내 다사 상서[甲戌年 境內 多士 上書]
1874년(고종 11) 7월 27일 강진현 경내 유학(幼學) 조희철(曺僖哲), 김봉일(金鳳一), 오 삼환(吳三煥) 등이 강진현감에게 “계속되는 효행 포상 천거를 잊히기 전에 포상해 달라”는 청원 상서이다. 연명인은 유학(幼學) 최인석(崔寅錫), 박련수(朴璉洙), 윤병하(尹秉夏), 조병길(曺秉吉), 이보영(李寶榮), 오감(吳鑑), 홍성종(洪聖鍾), 김석환(金錫煥), 김도수(金道洙), 한달겸(韓達謙), 박주석(朴柱奭), 윤신환(尹莘煥). 이정창(李廷暢), 이삼휘(李三輝) 등 17명이다. 현감의 제음을 간추리면 “보통보다 뛰어난 효행은 참으로 감탄할 만하다. 마땅히 천양(闡揚)하여 표창할 일”이라는 하였다. 당시 강진현감은 윤용(尹鏞, 무과, 파평인)이다. 1874년 4월부터 1876년 7월까지 재임하였다.
[문서7] 1874년 갑술년 강진현 다사 상서[甲戌年 康津縣 多士 上書]
1874년(고종 11) 9월에 강진현 유학(幼學) 최인석(崔寅錫), 김재국(金材國), 오삼환(吳三煥) 등이 암행어사(수의합하)에게 병영과 고을에서 여러 차례 올린 보고에도 아직 포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지적하면서, 암행어사가 사실을 조사하여 조정에 보고하여 포상하여 널리 권장하는 모범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양한흠 효행관련문서 목차
발간사 發刊辭 / 남원양씨 종친회장 양치중 ∥ 12
해제 解題 / 김희태 ∥ 16
대구 양한흠 효행관련문서 (강진군 향토문화유산 지정 자료) ∥ 51
양한흠 자료 (1848.9.18. ~ 1904.12.7.) ∥ 55
1. 1869 기사 4. 22. 서목 ∥ 59
대구면 석수동, 동임서목
2. 1869 기사 5. 29. 대구면 다사 상서 ∥ 69
유학 조석관, 윤후헌, 이정각
3. 1869 기사 7월 경내 다사 상서 ① ∥ 80
유학 오수인, 이방휘, 박현수
4. 1869 기사 9월 도내 유생 상서 ∥ 91
박기인 등
5. 1869 기사 9. 24. 통문 ∥ 99
전주향교 통본
6. 1874 갑술 7. 27 경내 다사 상서 ② ∥ 103
유학 조희철, 김봉일, 오삼환 등
7. 1874 갑술 9월 강진현 다사 상서 ① ∥ 111
유학 최이석, 김재국, 오삼환 등
8. 1877 정축 11월 강진현 다사 상서 ② ∥ 119
유학 김석환, 한달겸, 오윤환 등
9. 1879 기묘 11. 16 경내 다사 ③ 상서 ∥ 126
유학 김도수, 오계환, 조의승 등
10. 1861 신유 9. 19 양일록 차첩 ∥ 134
11. 1862 임술 9. 21 양완록 차첩 ∥ 136
12. 1910 경술 8. 29 양한흠 표창 ∥ 138
■남원 양씨 병부공파 선조 및 효자 양한흠 세계 ∥ 141
■월양 양한흠 효행1ㅣ ∥ 143
■양한흠 효행관련 문서 원본 ∥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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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기호 03090: 독자 대상 교양 · 발행 형태 단행본 · 내용 분류 총류.
분량·판형: 160쪽 · 판형 190*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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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양광식 / 에코미디어. 출간 후 상세 정보가 갱신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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譯註 金華遺稿 (2026-09-30)
아세안 소지역 국경 리스크와 협력 질서 동해문화사 · 2026-08-31
AI사고력을 위한 파이션 프로그래밍 경남대학교출판부 · 2026-08-31
중력과 은총/철학강의/ 신을 기다리며 동서문화동판(주) · 2026-08-31
OTT 시대, 방송 미디어의 이해 한울아카데미 :한울엠플러스 · 2026-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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