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화병』는 2026-10-30 출간 예정입니다. 출간되면 서점 판매 링크와 함께 이메일로 한 번 알려드립니다.
지난 시집 『이제 너를 놓쳐도 되겠습니까』를 읽으면서 나는 조선의 시인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일종의 사용설명서를 쓰고 있다고 보았다. 기대했다가 실패하고, 실패하면서 오기가 생기고, 너무 무거워진 마음에서 무엇인가를 덜어내는 과정을 여러 작품에서 보여주었다. 이번 시집에서도 덜어내는 일은 계속되지만 그 대상이 조금 달라졌다. 남들이 붙인 이름과 소문, 사회가 매긴 숫자와 평가를 걷어내다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놓은 자기 설명까지 살피게 된다. 그럼으로써 그 마음을 누가 어떤 말로 설명해왔는가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셈이다. 조선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마음을 설명해 온 말들을 하나씩 다시 점검한다. 남들이 붙인 말은 지우고, 자신이 잘못 쓴 문장은 비문으로 남겨두며, 때로는 자신이 믿어온 모습까지 의심한다. 그러면서도 지울 수 없는 시간은 그대로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인다. 『사막의 화병』은 그렇게 자신에 대해 설명해 온 말들을 다시 읽어본 기록이다.
- 강나루(시인, 문학평론가)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예정도서 등록 정보(출판사 제출)
작품론
나를 읽는 일
- 조선의 시집 『사막의 화병』
강 나 루
(문학평론가)
가끔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써야 할 때면 몇 줄 되지도 않는 빈칸 앞에서 오래 머뭇거리곤 한다. 이름이나 생년월일, 주소 같은 것은 생각할 것도 없이 적으면 되고 학력이나 경력도 있었던 일을 옮기면 그만인데, 나를 소개해보라고 하면 조금 난감해진다. 살아오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닌데 막상 몇 줄로 적으려니 성격이 어떻고 무슨 일을 좋아한다는 상투적인 말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써놓고 보면 틀린 말도 아니어서 더 곤란하다. 게다가 고작 그 몇 줄이 나인가 싶어진다. 다른 사람이 나를 설명하는 말을 들을 때도 비슷하다. 내가 생각하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기도 하고, 처음에는 아니라고 생각하다가도 여러 사람이 같은 말을 하면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 싶어진다. 자신에 대해서는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남의 말 몇 마디에 마음이 흔들리는 것을 보면 자기 자신을 읽는 일도 생각만큼 간단하지 않은 모양이다.
조선의 시인의 열한 번째 시집 『사막의 화병』 권두의 「시인의 말」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시인은 “수식과 명함이 나를 재단할 때마다 불 꺼진 방에 홀로 앉아 내 사유를 쓰다듬는다”고 적었다. 수식과 명함은 한 사람을 설명하는 데 꽤 편리하다. 처음 만난 사람의 직업을 알게 되면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고, 그 짐작이 관계를 맺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편리한 것은 자꾸 지나치게 사용하게 된다. 직함이 번듯하면 사람의 삶까지 번듯해 보이고 내놓을 만한 직함이 없으면 어딘가 부족한 사람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시인이 끝내 지켜낸 것이 “이름도 직함도 아닌” 한 사람의 영혼이었다고 쓴 데에는 그런 불편함이 있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번 시집의 시편에는 사람을 판단하고 분류하고 잘라내는 상황이 자주 나타난다. 이력서의 빈칸과 불합격 통보, 소문과 오명, 병원의 검사 결과, 숫자와 가격표, 쓸모와 효율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요즘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별로 낯선 것도 없다. 나 역시 그런 것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나 자신을 판단하면서 살고 있으니 시 속의 화자만 억울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토마토의 주권」은 이 문제를 조금 엉뚱한 곳에서 시작한다.
누군가는 과일이라 하고 누군가는 채소라 한다
햇빛을 가리는 차광막 아래
흙을 더듬어 뿌리를 뻗고
줄기는 노끈을 붙잡아 하늘로 오른다
몸속에 한 계절을 밀어 넣는 동안
시간의 행적 속으로 푸른색을 지우며 붉음이 도착한다
바람이 매서운 날에도
가느다란 꼭지는 둥근 세계를 놓지 않는다
속에서부터 번지는 선혈의 빛깔
터질 듯 팽팽한 긴장이 구체球體로 밀집한다
세간이 내린 무수한 오역을 삼키며
구형球形의 심장은 달아올랐다
매끄러운 외피 속에서 과육이 차오르고
멍든 상처는 마침내 지상의 성좌가 된다
어떤 틀에도 갇히지 않는 연대기는
짓눌릴수록 더욱 붉게 터지는 피의 서사시다
세상이 그어놓은 경계선을 비웃듯
홀로 무르익은 것을 온몸으로 증명할 뿐
어떤 각주도 필요치 않은 온전한 자태가 된다
분류학의 좁은 철창을 부수고 나온 핏방울
그 자체의 빛이야말로 눈부신 법
여름의 마지막 햇살 아래
누구의 허락도 없이, 스스로 타오르는 태양이 된다
- 「토마토의 주권」 전문
토마토가 과일인지 채소인지는 가끔 퀴즈처럼 등장하는 문제다. 식물학에서 보는 기준과 우리가 식탁에서 사용하는 기준이 달라서 어느 쪽이라고 말해도 그럴듯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런데 토마토의 처지에서 생각하면 참 쓸데없는 논쟁이다. 누가 과일이라고 하든 채소라고 하든 토마토는 햇빛을 받고 익을 때가 되면 붉어진다. 시인은 사람들이 붙인 분류를 “세간이 내린 무수한 오역”이라고 말한다.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잘 이해했다고 생각한 사람에게서 간혹 전혀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곤 하지만, 첫인상은 좀처럼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 사람을 새로 이해하는 것보다 첫인상에 새로운 행동을 끼워 맞추는 편이 편해서 그럴 것이다. “어떤 각주도 필요치 않은 온전한 자태”라는 구절도 그런 생각을 하게 한다. 사람은 자꾸 자신을 설명하는데, 그 탓에 어느 순간부터는 설명할수록 더 초라해지는 일도 있다. 상대는 이미 상대를 읽고 싶은 대로 읽고 있는데 혼자 계속 각주를 달고 있는 꼴이 되기도 한다. 토마토는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 그냥 제 속에서 익는다. 이 단순한 일이 사람에게는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그래서 화자가 말하는 ‘오역’과 ‘각주’라는 표현은 시집 이곳저곳에서 계속 떠오르는 화두가 아닌가 싶다.
다음의 「가위질이 깊을수록 상처는 아문다」에서도 ‘오역’과 가까운 느낌의 ‘오독’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관심이 간다.
책상에서 창문까지는 단 세 걸음
그 좁은 보폭 속에 말 못한 언어들이 수북이 쌓였다
누군가 가위로 생의 가장자리를 도려낼 때
뱉은 적 없는 오명이 낙인처럼 들러붙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편리한 단어만 골라 읽고
빈자리에 함부로 자기만의 생각을 채워 넣었다
낯선 이의 혓바닥이 날카로운 전지가위가 되는 계절
하지만 오독된 내 삶의 공백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은신처였다
가위질이 깊을수록 도리어 상처는 단단히 아문다
베여 나간 줄거리와 마침표 사이에서
짓밟힌 행간은 어느새 온전한 구절이 된다
바닥에 흩어진 고통의 잔해들을 모아
허물어진 서실書室을 새로이 꾸민다
이 텅 빈 여백은
그 누구도 침범하지 못할 고유한 영역
날 선 궤적이 지나간 흔적은
도리어 내가 숨 쉬는 방이 되고
마구 거세당한 변두리가 나를 지키는 벼랑이 된다
잘려 나간 자국마다 붉은 잉크가 힘을 얻고
도려내진 통증의 깊이만큼 또 다른 내가 뚜렷해진다
살기 어린 침범을 견뎌낸 육신의 고비마다
누구의 허락도 없이, 나라는 유일한 지문을 깨우며
선명한 피를 흘리며 일어선다
- 「가위질이 깊을수록 상처는 아문다」 전문
앞의 시에서 사람들이 토마토를 제 기준에 따라 분류했다면 여기에서는 한 사람의 삶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만 골라 읽는 양상이다. 화자는 사람들이 “빈자리에 함부로 자기만의 생각을 채워 넣었다”고 하는데, 소문이 만들어지는 과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후의 사정이 빠진 몇 마디가 옮겨 다니는 동안 처음의 이야기와 전혀 다른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화자는 사람들이 잘못 읽은 자신의 삶을 바로잡으려고 애쓰기보다 그들이 읽지 못한 공백을 “가장 안전한 은신처”로 삼았다. 화자가 자신의 공백을 은신처라고 부르는 까닭은 은신처로 도피한다고 상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의 말이 자신을 전부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온전한 자신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부분은 은신처에 있다며 위안을 얻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시집 『사막의 화병』에는 ‘오독’과 함께 줄거리, 행간, 구절, 서실, 여백, 잉크 같은 글과 관련된 어휘를 많이 쓰고 있다. 「격포의 서고」에서는 파도에 깎인 수성암의 층리가 오래된 책이 되고, 「느티나무 원고지」에서는 나이테를 한 생애가 적힌 원고지처럼 바라본다. 「신두리 서체」의 모래에는 바람이 글씨를 쓰는가 하면, 「굳은살의 등사」에서는 발바닥의 굳은살이 지나온 시간을 기록한다. 이처럼 시집의 시편들을 연달아 읽다 보면 비슷한 방식의 비유가 자주 사용된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조선의 시인에게 쓰고 읽는 일은 일상의 사물이나 자연을 바라보는 데까지 깊이 들어와 있는 것 같다.
이와 함께 여러 작품에서 반복되는 말이 ‘정본正本’이다. 「소문의 해독」에서는 “나라는 거대한 전집全集의 정본正本”이 나오고, 「지워진 정본」에서는 오독의 단어를 지운 뒤 “나만의 정본”을 확인한다. 여러 판본 가운데 기준으로 삼는 판본을 정본이라고 하는데, 사람에게 그런 것이 정말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내가 다르고, 같은 일을 두고도 시간이 지나면 나의 기억과 타인의 평가가 달라진다. 당시에는 잘했다고 믿었던 일을 나중에는 후회하기도 하고, 실패했다고 여겼던 일을 별일 아닌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자신의 정본을 하나로 정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지워진 정본」에서도 화자는 자신에 대한 정답을 길게 써놓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이 덧붙인 말들을 지우고 마지막에는 백지를 남긴다. 정본을 찾았는데 완성된 글이 아니라 빈 종이가 나온다는 점이 재미있다. 적어도 그곳에는 자신이 하지 않은 말이 적혀 있지 않고 앞으로 무엇을 쓸 것인지는 자신에게 남아 있다.
「호응의 침묵」에서는 이번 시집에서 자주 사용하는 글쓰기의 이미지와 함께 ‘비문非文’이라는 말이 나온다.
잘못 읽은 이면과 얼룩진 시간
찢어진 종이를 모으며 모서리를 손끝으로 쓸어내린다
지우려 할수록
잉크의 얼룩은 사방으로 번지고
삼키지 못한 탄식이 방 안의 정적을 무겁게 누른다
곧게 뻗으려던 직선은
매번 나를 향해 굽은 곡선으로 휘어진다
필기구를 쥔 손끝에 힘을 뺀다
더 이상 타인이 원하는 대로 잘 쓰려 하지 않는다
서툰 곡절을 빈 지면 위에 겨우 한 줄 내려놓을 때
내 안의 떨림이 고요한 리듬을 찾는다
지나간 날들의 대가가 이토록 가벼웠던가
단어들의 골짜기마다 빙벽이 일어선다
완벽한 호응을 거부한
그 모든 비문非文이야말로
내가 온몸으로 부딪치며 통과해 낸 진짜 나의 역사다
주술主述이 맞지 않아 절뚝거리며 걸어온 문장들은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사막의 화병 /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기우뚱
굽은 직선
연필심의 온기
토마토의 주권
이팝나무 잔치
손톱 밑의 검은 대지
비밀번호의 고고학
격포의 서고
손익계산서가 없는 숲
가위질이 깊을수록 상처는 아문다
신두리 서체
주홍빛 대속
새벽 세 시의 거울
느티나무 원고지
새팥, 초록의 월경
보이는 안대
제2부
플라타너스
꽃을 빠뜨리는 강은 없다
빙점의 해독법
어부바
굳은살의 등사
발바닥 지도
씨앗의 집필
자물쇠의 독단
상무동, 빙판 위의 직립
부재의 건축학
혓바늘 붉은 영토
찻잔의 묵독
사막의 화병
소문의 해독
비어 있는 칸
귀의 외곽
제3부
여백의 골격
내 안의 중력
꺾임의 골조
지워진 정본正本
쓸모를 다했다는 선언
내 안의 비는 먼저 그친다
마이너스 각도
활주로의 바깥
내 안의 신神
이름 석 자 꾹꾹
얕은 도시
입김의 발성
2%
나를 처분하지 마라
돌아오지 않을 곡선
방부의 서사
제4부
벽의 숨통
침묵의 방향
단단한 씨앗
호응의 침묵
봄까치꽃의 장엄한 망명
피라칸사스의 비망록
생이가래
쇠못의 직립
건기의 바다
비대칭의 비행
부력의 시간
기술적 상상력과 생의 문장
실루엣의 꽁지발
눈부신 광대
작품론
나를 읽는 일 / 강나루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부가기호 03810: 독자 대상 교양 · 발행 형태 단행본 · 내용 분류 문학.
분량·판형: 160쪽 · 판형 125*200.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 · 부가기호 뜻은 국립중앙도서관 ISBN 안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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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시와사람에서 2026-10-30 출간 예정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 기준). ISBN 9788956658759.
조선의 / (도서출판)시와사람. 출간 후 상세 정보가 갱신됩니다.
종이책으로 출간 예정입니다. 분량은 160쪽입니다. 정가는 12,000원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예정도서 등록 기준이며, 별도 판형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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