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선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초록이 나를 보았다』가 도서출판 이um의 ‘이um 시선 007’로 출간됐다. 이번 시집에는 표제작 「초록이 나를 보았다」를 비롯해 「오랜 우울에게」, 「우주적 솔루션」, 「슬픔의 눈금」, 「결핍이라는 자원」, 「울음 동호회」, 「나는 내 편이 아니었다」 등 모두 59편의 시가 4부에 나뉘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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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초록이 나를 보았다』는 우울과 슬픔, 결핍과 불면 같은 삶의 그늘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길어 올리는 시집이다. 시인은 마음의 상처를 서둘러 봉합하거나 섣부른 위로로 덮지 않는다. 대신 오랜 우울에게 말을 걸고, 슬픔의 눈금을 재며, 눈물이 앞을 가리는 순간에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생의 표정을 천천히 들여다본다.
이 시집에서 우울은 삶의 비바람을 막아 주는 방패가 되고, 결핍은 무뎌진 감각을 되살리는 자원이 된다. 깨진 자리를 금으로 잇는 ‘킨츠기’처럼 시인은 상처와 결핍을 한 사람의 고유한 무늬로 받아들인다. “늘 내 편이 아니었던 나”를 돌아보는 고백 또한 자신을 삶의 안쪽으로 불러들이려는 다정한 결심으로 이어진다.
20억 년 전의 바위와 공룡의 발자국, 먼 우주에서 오는 별빛과 보이저 1호를 오늘의 일상으로 불러들이고, 아파트 조경은 장구한 시간이 펼쳐지는 전시장이 되고, 한 사람의 고민은 우주적 거리에서 새롭게 바라본다. 시인은 인간의 짧은 생을 광대한 시간과 공간 속에 놓음으로써 지금의 슬픔이 삶의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총 4부로 구성된 이번 시집은 ‘오랜 우울’에서 출발해 눈물과 이별의 시간을 지나, 버리고 비우는 연습을 거쳐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말”에 도착한다. 그 여정에는 맨드라미와 목련, 자귀나무와 벚꽃이 피고, 고양이와 슈빌과 익룡이 등장한다. 무겁고 진지한 사유 사이로 ‘짹짹커피’, ‘울음 동호회’, ‘입만 남은 악어’ 같은 재치 있는 언어가 스며들어 삶의 비애를 유머와 활력으로 전환한다.
『초록이 나를 보았다』는 슬픔과 함께 걸으면서도 한순간 반짝이는 초록을 놓치지 않는 법을 보여주는 시집이다. 오래 견딘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다정함, 깨진 자리에서 비로소 시작되는 새로운 이야기, 조용하고 단단한 믿음이 이 시집을 관통한다. 눈물이 앞을 가릴 때에도 세계는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바로 그것이 정선희의 시가 건네는 가장 따뜻한 위로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정선희 시인 시집 『초록이 나를 보았다』 해설 원고
장구한 ‘시간’과 광대한 ‘공간’과 ‘사유’의 현대성
- 정선희 시집 『초록이 나를 보았다』에 대하여
[ 해설 ]
장구한 ‘시간’과 광대한 ‘공간’과 ‘사유’의 현대성
- 정선희 시집 『초록이 나를 보았다』에 대하여
김재홍 시인•문학평론가
흔히 서정시의 시간을 영원이라고 말합니다. 시는 인간의 손을 빌어 태어나는 것인데, 그것이 담고 있는 시간을 영원이라고 하는 것은 형용모순이거나 논리적 착오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순간을 살아가는 유한자인 인간은 영원히 ‘영원’을 희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무나 인간적인 욕망입니다. 인간은 시간 앞에서 한없이 열등한 존재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시인은 그것에 도전하는 최전선에 선 자라고 하겠습니다.
시인들은 멀리 과거와 대화하고, 더 멀리 미래와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마주하는 대상은 일찍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거나 아직 오지 않은 사람입니다. 시인들은 우선 존재론적으로 같은 고뇌를 겪으며 살다가는 사람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생물학적으로 차원을 달리하는 나무와 풀과 꽃과 소통하는가 하면, 물리적으로 구별되는 하늘과 바람과 구름과 바위와도 무람없이 지냅니다. 시간 앞에서 그들도 한없이 초라한 존재들이니까요.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은, 시인들과 소통하는 존재들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결국 시는 사람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시의 숙명입니다. 시는 오직 사람 편에선 말과 같습니다(“말아, 사람편인 말아”, 정지용, 「말‧1」). 하나도 사람, 둘도 사람, 셋도 사람입니다. 시는 시인의 손을 빌어 태어나 사람만을 지향하는 양식입니다. 때문에 시적 대상에 대한 매우 집요하고 특별한 관심이 엿보이는 정선희의 네 번째 시집 『초록이 나를 보았다』도 결국 사람 편에 서 있습니다.
바위와 공룡과 슈빌
정선희는 20억 년 전 지질 시대의 바위를 탐색하는가 하면, 1억6천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의 공룡과 대화를 나눕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맨드라미와 목련과 자귀와 벚꽃과 소통하며 우울과 슬픔까지 사유합니다. 그의 시적 관심은 수직적 시간에다 수평적 공간을 통섭하는 모자이크와 같다 할 수 있습니다. 장구한 시간과 광대한 공간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시에 호출하는 정선희의 의욕은 어디를 향하겠습니까.
물론 사람입니다. “시간 건너의 이야기가 / 열두 폭 병풍처럼 펼쳐진다”면서 “저 조각들을 이어 붙이면 / 어떤 새로운 서사의 주인공이 탄생할까”(「큐레이터」)라고 자문하는 그는 아파트 단지 안의 조경을 통해 태초의 빛부터 20억 년 전의 바위를 큐레이션합니다. 그 귀결이 놀랍습니다. 그것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의 발견입니다.
아파트 조경은 산수화 전시장 화폭 같다
바위에 물을 주자 그림이 쑥쑥 자란다
정해진 풍경인데 빛이나 습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농담을 갖는 그림들
비가 오면 더 선명하게 번진다
빛은 제 안에 물의 길을 가지고 있어
출렁이는 물결로 도록을 넘기는 것 같아
시간 건너의 이야기가
열두 폭 병풍처럼 펼쳐진다
저 조각들을 이어 붙이면
어떤 새로운 서사의 주인공이 탄생할까
아파트를 지날 때마다
나는 큐레이터가 된다
태초에 빛이 있었고
빛이 물을 사랑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굴절되기 시작했답니다
꽃이 피고 나무가 자라는 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증거
세상은 너무 진부해
좀 더 재미난 이야기가 없을까?
20억 년 전 바위가 들려주는 이야기
물이 내 몸을 가로지른 경로가 확실하지 않아서
즐거이 길을 잃는다
물소리로 흐르며 가야 할 곳을 바위에게 물었다
- 「큐레이터」 전문
어떻습니까. “사람은 사람 이전에 이 땅에 나타난 모든 존재들의 바람과 애씀의 열매”(양명수, 「우주 생명의 길, 사람됨의 길」, 테야르 드 샤르뎅, 『인간현상』)라는 도저한 사유가 보이지 않으십니까. 조경은 이미 “정해진 풍경인데 빛이나 습도에 따라 / 시시각각 다른 농담을 갖는 그림들”이며, 그것은 저 멀리 ‘태초의 빛’에서 시작되어 20억 년 전 바위와 팽창하는 우주와 함께 우리 곁에 온 것입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서사들이 스며들어 있어 말로 다할 수 없는 천변만화의 산수화가 펼쳐진 것입니다. 여백 속에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산수화 자체입니다.
오늘의 ‘사람’을 있게 한 장구한 시간은 우주의 팽창과 더불어 미래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우리 다음에 오는 사람들과 모든 존재들을 바라기에 오늘도 애를 쓰며 살아갑니다. 시인이 “좀 더 재미난 이야기가 없을까?”라고 한다거나 “즐거이 길을 잃는다”라는 시구를 표의 그대로 해석하면 안 되겠습니다. ‘더 재미난’ 이야기는 세계의 다양성과 다질성을 함축합니다. 세계는 펼쳐져 더욱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진보인 것이죠. 그러므로 ‘길을 잃’는 것도 얼마든지 행복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넓고 넓은 우주의 작디작은 틈새를 살다가는 우리는 적극적으로 길을 잃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선희의 큐레이션은 이처럼 장구하고 광대합니다.
노후를 걱정하는 너는
몽골 사막의 별들을 생각하는 나를 되묻는다
먼 과거로부터 오고 있는 별빛들이
언제 도착할지를 몰라
일몰이 잰걸음으로 마중을 나가고 있다
너는 현실 도피라고 하지만
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밤하늘이 시작되던 태초를 올려다보는 것이다
머리가 아프면 생각을
발가락에 옮겨 밖으로 나가 걷는 것처럼
지금 여기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우주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
전쟁과 기아, 환경 문제
우주적 관점으로 멀리서 보면
사이사이 별이 떠 빛나고 있을 텐데
초식공룡처럼 몸을 부풀린 고민들이
어떻게 멸종하는 지도 알게 될 텐데
보이저 1호는 오래전 돌아본 지구에서
어떻게 서로를 태워 권태로워지는지를
나와 나를 공전하는 한 사내로부터 깨달았을지도
우주가 너와 나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 「우주적 솔루션」 전문
그러나 우리는 세속을 살며 일상 속에서 하루하루 고민하며 살아갑니다. 우리의 원인이 저 먼 빛에 있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결과가 다가올 저 먼 미래의 어느 돌 조각 같은 것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날마다 삶의 편린을 고역으로 인식하며 삽니다. 그러니 정선희의 솔루션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몽골 사막의 별들”에게서 해법을 찾고, “보이저 1호가 오래전 돌아본 지구”에서 탈출구를 봅니다. 시인의 말처럼 그것은 “현실 도피”가 아닙니다. “더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 밤하늘이 시작되던 태초를 올려다보는” 것입니다.
아주 아름다운 표현이 이 작품의 시적 기운을 드높이고 있습니다. 서녘 하늘로 저무는 일몰은 왜 붉은 것인가요. 바로 “먼 과거로부터 오고 있는 별빛들이 / 언제 도착할지를 몰라” 애태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왜 우리 삶의 터전을 산보하는 것인가요. 바로 “머리가 아프면 생각을 / 발가락에 옮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난고난 한 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정선희의 「우주적 솔루션」을 깊이 음미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고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슈빌처럼 우리도 “말뚝처럼 묵묵히 버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구두코를 닮아 슈빌이라 불리는 새
너무 큰 날개와 중력을 거스르는 몸집
지상에서 가장 큰 부리의 슬픔이 무겁다
고대에서 날아든 새
오만한 듯 소심한 듯
말뚝처럼 묵묵히 버텨낼 것이다
- 「슈빌」 부분
초록도, 슬픔도, 우울도
“태양과 나와 물오리 사이에서 만들어진 // 찰나의 색을 분명히 보았다”는 이번 시집의 표제작 「초록이 나를 보았다」를 봅니다. 보다시피 정선희는 여기서 ‘순간’을 봅니다. 장구한 시간과 광대한 공간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찰나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태양과 나와 물오리 사이에서 만들어진
찰나의 색, 분명히 보았다
물오리 한 마리 고개 돌릴 때
눈동자가 초록으로 빛나는 것을
쏟아지는 빛 사이로 눈 맞추려고 했지만
기억의 셔터를 눌러봤지만
찰나와 사이에서 찍힌 건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차례
시인의 말
1부 오랜 우울에게
차가운 손 · 12
오랜 우울에게 · 14
큐레이터 · 16
걷는 기분 · 19
우주적 솔루션 · 21
킨츠기 봄 · 23
슈빌 · 25
슬픔의 눈금 · 27
결핍이라는 자원 · 29
영리한 우울 · 31
휴가 두 배로 즐기기 · 33
심심함을 찾아서 · 36
바위 연습 · 37
슬픔은 어디로 가야 하나 · 39
돌을 기르는 사람 · 41
2부 눈물이 앞을 가릴 때
초록이 나를 보았다 · 44
부치지 못한 편지 · 46
책의 귀 · 48
감정의 포기 · 50
용기 · 52
맨드라미의 설문법 · 54
뭉뚱그리는 말 · 57
옴 · 59
짹짹커피 · 61
울음 동호회 · 63
무채색으로 무채색을 말하는 · 65
철쭉으로 만든 관 · 68
길들여진다는 것 · 69
3부 버리고 비우면서 떠나는
내기하듯 목련나무 · 72
초록과 맞장 뜨다 · 74
거룩한 이사 · 75
표정의 광고판 · 77
만대재 고양이 · 80
집들이 선물 · 82
자귀, 자기 · 84
벤치의 자세 · 86
운명의 수레바퀴 · 89
책기둥 · 91
불면증 · 93
남해 설천의 봄 · 95
나는 내 편이 아니었다 · 97
4부 사랑을 많이 받았다는 말
밤의 소리 · 100
다정한 것들이 살아남는다 · 102
노후 준비 · 105
슬픔이 시킨 일 · 106
입이 없는 인형 · 108
손의 세계 · 110
꼭두각시 · 112
그게 뭐라고 · 113
입만 남은 악어 · 115
웃음 포인트 · 117
자살도 힘이 있어야 · 119
신선놀음 · 121
놀아주다 · 123
송창식 · 125
익룡발자국 박물관 · 126
생활의 달인 · 128
벚꽃 엔딩 · 129
|해설 | 김재홍 _ 장구한 ‘시간’과 광대한 ‘공간’과 ‘사유’의 현대성 · 130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부가기호 03810: 독자 대상 교양 · 발행 형태 단행본 · 내용 분류 문학.
분량·판형: 160쪽 · 판형 128*188.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 · 부가기호 뜻은 국립중앙도서관 ISBN 안내 기준
정선희 시인의 네 번째 시집 『초록이 나를 보았다』가 도서출판 이um의 ‘이um 시선 007’로 출간됐다. 이번 시집에는 표제작 「초록이 나를 보았다」를 비롯해 「오랜 우울에게」, 「우주적 솔루션」, 「슬픔의 눈금」, 「결핍이라는 자원」, 「울음 동호회」, 「나는 내 편이 아니었다」 등 모두 59편의 시가 4부에 나뉘어 실렸다. (정선희 (지은이), 이um 펴냄)
이um에서 2026-09-11에 출간했습니다. ISBN 9791199846852.
정선희 (지은이)입니다. 자세한 저자 소개는 출판사(이um) 제공 자료를 참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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