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이경숙』는 2026-10-29 출간 예정입니다. 출간되면 서점 판매 링크와 함께 이메일로 한 번 알려드립니다.
들어가는 말
8월의 햇살은 유난히 따가웠다. 당진 신리성지의 잘 가꾸어진 잔디와 나무들은 한여름의 볕 아래서도 온통 푸르렀다. 뜨거운 공기가 내려앉은 날이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초록을 바라보고 있자니 폭염도 잠시 누그러지는 듯했다. 그날 신리성지 안에 있는 치타누오바 카페에서 화가 이경숙 선생을 처음 만났다.
선생은 가녀린 모습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차를 마시고 빵을 나누어 먹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림 이야기였고, 곧 당진으로 내려온 이야기, 교사 시절과 여행, 당진과 합덕, 신앙과 봉사의 시간으로 대화가 이어졌다. 한 사람이 살아온 긴 세월을 한두 시간 안에 모두 들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그의 삶을 오래 붙들고 있는 몇 가지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그림과 사람, 자연과 신앙이었다.
스물네 살의 이경숙은 1975년 처음 합덕으로 내려왔다. 기차에서 내려 다시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하던 시절이었다. 아스팔트가 깔리지 않은 길에는 버스 한 대가 지나갈 때마다 뽀얀 먼지가 일었고, 길가에는 칸나와 코스모스, 해바라기가 피어 있었다. 무엇보다 그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끝없이 펼쳐진 들판이었다. “와, 이렇게 넓은 들판이 있네.” 그때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 머물다 떠날 수도 있었던 합덕이 자신의 삶의 터전이 되고, 남편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두 딸을 키우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림을 그리는 두 번째 고향이 되리라는 것을.
이경숙은 28년 동안 미술교사로 교단에 섰다. 학생들과 그림을 그리고 미술대회를 준비했으며, 때로는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다. 교직생활을 돌아보는 그의 말에는 ‘가르쳤다’보다 ‘함께했다’는 기억이 더 짙게 남아 있었다. 그 학생들은 세월과 함께 자랐다. 교사가 되고, 교장이 되고, 작가와 교수가 되고, 지역사회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젠 머리가 하얗게 물들어 같이 늙어가고 있습니다.” 그 한마디에 교사로 살아온 긴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에도 그림은 놓지 않았다. 당진에서 전시회를 여는 것 조차 쉽지 않았던 시절, 지역의 미술교사들과 뜻을 모아 학동인회를 만들었다. 제대로 된 전시장이 없어 빈 공간을 빌리고 직접 청소하며 작품을 옮겨 걸었다. 그 시절을 이경숙은 “전시회는 꿈도 못 꾸는 불모지”였다고 기억한다. 그렇게 시작한 작은 움직임은 오랜 시간을 지나 당진미술협회와 여러 미술단체의 활동으로 이어졌다. 문예의전당이 생기고 지역 곳곳에서 전시가 열리는 오늘의 당진을 바라보며 그는 학동인회를 “당진 미술의 발판”이라고 말했다.
그의 그림을 가장 오래 붙들어온 것은 자연이었다. 산과 들판, 강과 바다, 구름과 바람, 풀과 나무, 포구와 낡은 배. 여행 중에 만난 평범한 풍경들이 그의 화폭으로 들어왔다. 그는 거대한 자연의 모습보다 그 안에 숨어 있는 작은 변화에 더 마음이 갔다고 했다. 겨울눈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 4월과 5월이면 세상을 가득 채우는 연둣빛,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계절을 바꾸어놓고 다시 고요해지는 자연. “자연은 나의 스승이고 나의 일부입니다. 자연은 엄마의 품과 같아요.”
남편의 고향인 울진에 머물 때면 바닷가와 포구를 찾았다. 오래된 배와 거친 밧줄, 바닷바람에 말라가는 어물과 어부들의 흔적을 바라보았다. 사람이 보이지 않는 풍경에서도 그는 사람의 삶을 읽었다. 그렇게 만난 장면들은 「덕장」과 「세상 밖으로」 같은 작품으로 이어졌다. 평생 그린 수많은 작품 가운데 단 한 점만 남길 수 있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이 작품들을 떠올렸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그림으로 인간의 삶의 현장이 녹아 있습니다. 생생한 삶이지요.” 자연을 그렸지만 그 안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교직을 마친 뒤에는 사람의 마음을 한층 더 가까이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봉사를 시작해 어르신들에게 그림을 가르쳤고, 다시 미술치료를 공부해 노인과 청소년, 지역 주민들을 만났다. 잘 그린 그림인가보다 한 사람이 어떤 색을 고르고 어떤 선을 긋는지, 그 그림 속에서 무슨 이야기를 꺼내놓는지를 오래 바라봤다. 그래서 이경숙에게 자연을 그리는 일과 사람의 마음을 만나는 일은 서로 다른 일이 아니었다. “자연을 그리는 것도 마음의 그림이고, 미술치료 시간에 그리는 것도 마음의 그림입니다.”
그 사이를 이어주는 말은 사랑과 진심, 그리고 소통이었다. “자연과의 소통, 학생들 마음과의 소통, 어르신들 마음과의 소통. 서로의 마음이 통하지 않으면 형식에 불과합니다.” 돌아보면 그 말은 화가로서의 태도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을 대할 때에도, 어르신들의 그림 앞에 앉아 있을 때에도, 자연 앞에서 자신의 캔버스를 펼쳤을 때에도 그가 중요하게 여긴 것은 결국 마음과 마음이 닿는 일이었다.
신앙 역시 그의 삶과 그림을 오랫동안 함께해왔다. 남편과 함께 합덕성당 성가대에서 노래했다. 남편은 테너를, 그는 소프라노를 맡았다. ‘노래하는 순례단’과 함께 전국의 성지를 찾아다니며 성가 봉사를 했고,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따라 마카오와 중국 상하이까지 순례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길을 걷다 보니 자신이 살아온 당진과 내포지역도 새롭게 보였다. 솔뫼성지에서 합덕성당, 신리성지와 여사울성지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수많은 순교자의 역사가 남은 이 길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던 그는 100호 네 점을 연결해 모두 400호에 이르는 ‘한국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그렸다. 그림과 신앙, 자신이 살아온 지역의 역사가 한 화면 안에서 만난 것이다.
첫 만남을 마치고 치타누오바 카페를 나섰을 때였다. 선생은 곧장 돌아서지 않고 신리성지 안의 성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기도를 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녀린 한 사람이 고요한 성당 안에서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학생을 가르치고, 가족을 돌보고, 그림을 그리고, 어르신들의 마음을 만나고, 성가를 부르고 순례길을 걸어온 한 사람의 시간이 그 뒷모습 안에 잠시 멈추어 있는 것 같았다. 처연하면서도 평온했다. 무엇을 기도하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 모습은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기도를 마친 뒤에는 함께 신리성지 순교미술관에도 잠시 들렀다. 그림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 뒤 헤어질 시간이 되었지만 선생은 멀리 떨어진 주차장까지 직접 걸어와 배웅해주었다. 8월의 햇볕은 여전히 뜨거웠고 신리성지의 잔디는 푸르렀다.
이후 여러 차례 인터뷰가 이어졌다.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교단에 처음 섰던 날, 학동인회를 만들던 젊은 미술교사들의 이야기, 가족과 여행, 작품과 전시, 미술치료와 봉사, 신앙과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오랜 세월 묻어두었던 기억이 하나둘 그의 목소리를 따라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훗날 어떤 화가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물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가진, 가슴이 따뜻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다.”
유명한 화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도, 뛰어난 작품을 많이 남긴 작가로 기억되고 싶다는 말도 아니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을 가진 사람, 그리고 가슴이 따뜻한 사람.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마지막 질문은 짧았다. “선생님에게 그림이란 무엇입니까?” 그 역시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나에게 그림이란 나 자신이며 내 자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경숙의 그림을 기록한다는 것은 그의 삶을 기록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 모든 시간이 한 사람 안에서 오래 겹쳐져 한 점 한 점의 그림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 그 이야기를 천천히 펼쳐보려 한다. 짧은 말 하나도 쉽게 버리지 않으려 한다. 그 말들이 모여 한 사람의 생애가 되기 때문이다.
뜨거웠던 8월, 신리성지의 초록 사이에서 만난 이경숙 선생은 마지막까지 주차장으로 걸어와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은 한 점의 풍경처럼 오래 마음에 남는다고.
이경숙의 그림이 그러하듯이.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예정도서 등록 정보(출판사 제출)
글 싣는 순서
일러두기
들어가는 말|어떤 사람은 한 점의 풍경처럼 오래 마음에 남는다
1장 낯선 길 끝에서 만난 합덕
연꽃방죽과 사랑받던 막내딸
부산의 바다, 서울의 학창시절
수녀를 꿈꾸던 소녀에게 그림이 찾아오다
상명여대에서 화가와 미술교사를 꿈꾸다
스물네 살, 서울을 떠나 당진으로
합덕성당 종소리와 두 번째 고향
2장 아이들과 함께 살았던 시간
예순 명의 눈망울과 처음 마주한 교실
미술실이 없어도 이어진 그림 수업
학생미술전과 미술대회, 다락방 화실
『언제나 마음은 태양』과 마음 아픈 아이들
그림으로 가까워진 아이들과의 시간
머리가 희어져 다시 만나는 제자들
3장 당진 미술의 첫 장을 열다
“전시회는 꿈도 못 꾸는 불모지였어요”
“우리끼리 전시회를 해보자”
1982년, 학동인회의 첫걸음
전시장 없는 도시에서 작품을 걸다
당진미술협회의 탄생과 학동인회를 지켜온 시간
야외사생으로 이어진 사람들, 달라진 당진 미술
함께 당진 미술을 만들어온 사람들
4장 길 위에서 만난 자연, 화폭에 머물다
부부교사의 여행과 사계절의 풍경
울진의 바다와 포구에서 만난 사람들의 삶
후포항에서 태어난 「세상밖으로」
「덕장」,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생생한 삶
“저 풍경은 내가 갖고 싶다”―스케치에서 대작까지
“자연은 나의 스승이고 엄마의 품입니다”
공모전과 수상, 그리고 좋은 그림 한 점
2019 ‘당진 이 시대의 작가’, 45년을 돌아보다
5장 교단을 떠나 다시 사람에게
교문을 나선 뒤 찾아온 빈자리
“제가 할 수 있는 봉사가 있을까요”
어르신을 찾아가는 봉사와 그림 수업
다시 학생이 되어 미술치료를 공부하다
그림으로 사람의 마음을 만나는 시간
성가정 노인대학, 다시 이어진 가르침
오순도순 버그내 투어, 어르신들과 다시 바라본 당진
6장 노래하고 기도하며 걸어온 길
남편은 테너, 나는 소프라노
세례와 결혼식, 성당에서 함께한 가족
‘노래하는 순례단’과 전국의 성지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를 따라 마카오와 상하이까지
다시 최양업 신부의 길을 걷다
솔뫼에서 합덕으로, 신리에서 여사울로
100호 네 점을 이어 만든 400호의 순례길
“내가 참 잘한 것은 성당 다니는 거였어”
7장 다시 살아도 화가
자연과 사람, 모두 마음의 그림
사랑과 진심, 그리고 소통
제자와 동료, 비평가의 기억 속 이경숙
“나의 고향은 합덕입니다”
스물네 살의 나에게―“너의 젊음을 사랑한다”
“이렇게 행복하게 살다 보니 할머니가 되었네”
그래도 마음은 청춘
“다시 살아도 화가의 길을 선택하겠습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눈, 가슴이 따뜻한 사람
“나에게 그림이란 나 자신이며 내 자식입니다”
부록
이경숙의 작품 세계
이경숙 연보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부가기호 04090: 독자 대상 교양 · 발행 형태 전집·총서·다권본·시리즈 · 내용 분류 총류.
분량·판형: 212쪽 · 판형 152*225.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 · 부가기호 뜻은 국립중앙도서관 ISBN 안내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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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문화재단에서 2026-10-29 출간 예정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 기준). ISBN 9791195262755.
최미향;인터뷰 : 이경숙; / 당진문화재단. 출간 후 상세 정보가 갱신됩니다.
종이책으로 출간 예정입니다. 분량은 212쪽입니다.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예정도서 등록 기준이며, 별도 판형이 추가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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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에 출간예정으로 등록된 도서입니다. 서점 등재 전 단계의 공식 서지 정보이며, 출간 후 소개·표지 등 상세 정보가 자동으로 갱신됩니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서지정보유통지원시스템 (매일 갱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