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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현상을 분석하고 구조를 설명하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설명을 넘어 질문을 던질 때, 인간은 그 구조의 근원을 묻게 된다. 이 책의 시작은 보이는 것 너머를 감성적으로 말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분하고 연결하는 기준을 세우는 데 목적이 있다.
출처: 알라딘 Open API 제공 도서 정보
인간은 눈에 보이는 세계에 익숙해진 존재다.
우연히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보다가 “가수는 노래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가수는 눈에 보이지만, 노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노래는 공기 속을 전파하는 소리의 파장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보이지 않는 소리로 울고 웃고, 때로는 인생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한 사람의 노래가 낯선 사람들로 가득 찬 공연장을 하나의 마음으로 묶는 장면은 결코 낯설지 않다.
베토벤의 합창 교향곡을 들을 때 느끼는 장엄함 또한, 눈에 보이지 않는 파장이 만들어 내는 힘이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세계를 움직이는 경험은 우리의 일상 속에도 흔하다. 약속을 지키겠다는 말 한마디가 신뢰를 만들고, 따뜻한 말 한 문장이 하루의 분위기를 바꾸기도 한다. 사람의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생각·감정·관계·행동을 움직이는 힘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인간 사회는 “말로 연결된 세계”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말이 개인의 삶뿐 아니라 역사와 문명까지 바꾸기도 한다. 한마디 격려가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경우, 지도자의 말이 사회 전체를 움직이는 경우, 사랑의 말이 사람을 살리는 경우 등이다. 반면에 역사에서 거짓말과 선동이 사회를 무너뜨리는 경우도 있었고 인간 사회는 실제로 “말” 위에 세워져 있다. 결혼 서약, 판결 선고, 계약 체결, 의사의 진단 등이 이 경우에 속한다.
이러한 경험은 자연스럽게 ‘창조’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진다.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예술이 보이지 않는 생각에서 시작되어 보이는 작품으로 나타난다.
동일하게 우주 역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람의 존재와 가치는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대개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그를 이해한다.
말은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과 마음의 표현이고, 행동은 그것이 현실 속에서 드러난 결과다.
말은 사라지지만, 그 말이 남긴 영향은 오래 지속된다.
인간의 말조차 한 사람의 존재를 규정할 만큼 힘이 있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얼마나 큰 힘을 지니고 있을까?
우주는 분명히 존재한다.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고, 아침에 숨 쉬는 공기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이 거대한 우주가 어떻게 시작 되었는지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인류 역사 내내 계속되어 왔다.
오늘날 대표적인 설명은 두 가지다.
하나는 과학이 말하는 빅뱅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다.
이 책은 이 두 설명을 서로 대립시키려는 목적에서 출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의 창조가 과학적 사고와 반드시 충돌하지 않으며, 충분히 이해 가능한 설명이라는 점을 차분히 이야기하고자 한다.
과학은 이미 존재하는 자연과 우주를 관찰하고, 측정하며, 그 결과를 이론과 수식으로 정리하고 설명하는 학문이다.
시계를 분해하면 구조와 작동 원리는 설명할 수 있지만, 그 시계를 처음 만든 사람까지 밝혀 주지는 않는다.
과학은 “어떻게”를 설명하는 학문이고, 성경은 “왜”를 묻는 책이다.
예술가가 아무리 뛰어난 창작력을 지녔다 해도 완전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기 어렵 듯, 과학 역시 이미 주어진 자연을 바탕으로 설명하는 학문이다.
무에서 유로의 창조는 인간과 자연이 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창조는 오랫동안 신화나 비과학적인 주장으로 취급되어 왔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모든 것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필자는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을 던지고 싶다.
과연 빅뱅 이론은 정말 ‘무’ 에서 시작되었는가?
설명하기 어렵다면 초기 상태의 물질과 에너지는 어디에서 왔는가?
출발점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필자는 하나님의 창조와 빅뱅 이론을 비교하는 데서 출발해, 과학의 발달사와 물리·화학의 법칙, 수학과 숫자의 체계, 뉴턴 역학과 양자역학, 창세기 1장의 이해, 창조의 흔적으로 생각되어 지는 것들, 성경이 신뢰할 만 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기적들을 함께 살펴 보려고 한다.
목적은 단순하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이해가 비이성적이거나 반 과학적인 주장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 목표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은 동일한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들이 마시는 물과 숨 쉬는 공기, 발 밑의 흙, 건물을 이루는 모든 재료들 그리고 인간의 몸까지 모두 같은 원자를 기본 재료로 한다.
마치 같은 밀가루로 빵도 만들고 국수도 만들 수 있듯, 차이는 재료가 아니라 구성과 관계에 있다.
모든 것은 하나의 근원에서 출발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필자는 이 사실이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 는 성경의 선언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평생 재료 공학을 전공하고 가르쳐 온 필자는 늘 재료의 기원에 대해 궁금해 왔다. 교수로 첫 강의를 마치고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학생이 재료의 기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결국 이 책을 쓰게 한 출발점이 되었다.
과학은 자연 속에 이미 주어진 질서와 법칙을 발견하고 체계화한 학문이다.
창조는 없는 것을 있게 하는 지혜와 힘의 결정체다.
무에서 유로의 창조를 생각할 때 우리는 설계와 의지, 그리고 그것을 현실로 구현하는 힘을 함께 떠올리게 된다.
필자는 과학은 창조를 부정하는 도구라기보다, 오히려 창조의 세계의 질서를 발견하게 하는 하나의 창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 책은 한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를 일부 이해하게 된 것에 대한 감사의 기록이며, 동시에 창조를 부정하는 시대를 향하여 과학과 창조를 동일 선상에 두고 사유해 보자는 권유이기도 하다.
이 책이 믿는 이들에게는 과학 때문에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주고, 믿지 않는 이들에게는 과학과 신앙을 다시 한 번 차분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이 우주와 생명의 근원에 대해 각자가 진지하게 질문해 보게 되기를 소망한다.
우주는 왜 존재하는가?
우주는 왜 질서정연한가?
우주는 어떻게 수학으로 설명 가능한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
보이지 않는 말씀이 보이는 세계를 세웠고, 우리는 그 세계 속에서 여전히 그 근원을 묻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이 이 세계를 만들었다면, 그 근원은 무엇일까?
성경은 그 근원을 하나님의 말씀 즉 Logos라고 말하고 있다.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발문 | 김하기
말씀으로 지어진 세계,
그리고 말씀으로 지어진 사람
시작하며: 책을 덮고 드는 질문
이 책을 덮으면서 나는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과학과 신앙의 대립을 당연하게 여겨온 나의 기존 생각에 거대한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 아니라, 그 서늘한 균열을 타고 내면 깊숙이 흘러 들어온 선명한 빛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세계를 움직인다’는 일상의 감각적 경험에서 출발하여, 말씀(Logos)으로 지어진 창조라는 성경의 신학적 선언을 현대 과학적 사고와 충돌하지 않는 이해 가능한 구조로 매끄럽게 설명해 보인다. 이는 지식의 나열로 무장한 단순한 신학적 변증서가 아니다. 평생을 물질의 미시 세계와 씨름해 온 한 과학도가 자신의 전 생애를 걸고 천착해 온 근원적 질문에 대해 하나님과 사람 앞에 내놓은 가장 정직하고 엄밀한 답변이다.
나는 이 발문을 통해 단순히 책의 장별 내용을 요약하는 기계적 작업을 넘어, 저자인 정원섭 교수(집사)와 3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동안 한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을 하며 곁에서 목격한 그의 삶과 사유의 궤적이 이 한 권의 책에 어떻게 오롯이 녹아 있는지를 증언하고자 한다. 그의 신앙은 책 속의 벼려진 논리만큼이나 지독하리만치 치열했고, 그의 삶은 책 속의 고백만큼이나 한결같이 일관되었다. 그러므로 이 책은 그가 학문의 일상에서 살아낸 신앙의 결정체이자, 그가 앞으로도 걸어갈 소명의 길을 밝히는 신앙의 선언문이기도 하다.
제1부: 30년의 동행, 그리고 뒤바뀐 순서
나는 정원섭 교수를 30년 가까이 곁에서 알고 지냈다. 그가 부산대학교 재료공학과 교수로 부임하면서 우리 교회에 등록했고, 당시 초등학생이던 그의 아들을 내가 주일학교에서 가르치게 되면서 우리는 처음 서로 먼발치에서 인사를 나누며 인연을 맺었다. 그 시절에 내가 바라본 그는 그저 자녀 교육에 마음을 쏟는 ‘신실한 아버지’이자 연구실을 지키는 ‘성실한 대학교수’라는 단편적인 모습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신앙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그의 학문적 사유가 얼마나 치열하게 영성과 맞닿아 있는지는 훨씬 더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는 평생을 재료공학이라는 응용과학의 최전선에서 가르치고 연구해 온 뼛속까지 정밀한 과학도다. 부산대학교 공과대학에서 수많은 공학 인재를 길러냈고, 정년 은퇴를 맞이한 지금 이 순간에도 학문적 탐구와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나는 오랜 세월 그를 공적인 자리에서는 ‘정 교수’로, 신앙의 공동체 안에서는 ‘정 집사’로 불러왔다. 돌이켜보면 이 두 가지 호칭은 그의 삶에서 결코 분리되거나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는 실험실에서 원자의 미시적 배열과 물질의 고유한 물성을 탐구했고, 제단 앞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영적 성장을 도모했다. 그의 손에는 주중에는 전자현미경이, 주일에는 성경책이 들려 있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4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앙을 전혀 갖지 않았던 철저한 유물론적 과학자였다는 점이다. 그는 연구실에서 재료의 근원과 기원을 추적하고 물질의 한계를 고민하던 끝에, 물리적 인과관계를 넘어서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할 수 있는 분은 오직 절대적 창조주 하나님뿐’이라는 필연적 결론에 도달했다. 그때 비로소 무릎을 꿇고 신앙을 가졌다. 따라서 그의 신앙 고백은 감정적 동요나 초자연적 환상에 기댄 맹목적 체험이 아니라, 수십 년간 축적된 합리적·학문적 탐구가 종착지에서 마주한 필연적인 존재론적 발견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가 장년 전도회에 소속되면서 우리는 비로소 대화를 나누는 신앙의 동지가 되었다. 어느 날 그는 대학교 강의실에서 우리 전도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자신이 정립한 창조론의 비전을 슬라이드로 명쾌하게 강의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성경의 문자를 단순히 평면적으로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평생 연구해 온 재료공학의 물리적 언어로 창세기를 역동적으로 해석해 내고 있었다. 물질파의 성질, 원자의 격자 배열, 결정 구조의 안정성, 그리고 물성의 구현 과정을 창조주의 신성한 질서와 연결 짓는 그의 강연은 생경하면서도 거대한 영적 울림을 주었다.
그때 나는 확신했다. 이 사람은 자신의 신앙을 값싼 감정적 위로나 심리적 안정을 위한 도피처로 삼지 않고, 전 인격과 지성을 건 치열한 학문적·영적 탐구의 본질로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그가 대화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강조하던 격언을 기억한다. “과학은 피조 세계가 어떻게(How) 작동하는가를 정밀하게 말해주고, 성경은 이 세계가 왜(Why) 존재하는가라는 기원과 목적을 말해준다.” 이 책의 제1부를 관통하는 명쾌한 통찰은 바로 그가 평생 연구실과 교회 사이를 오가며 다듬어온 이 한 문장의 대전제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의 신앙은 단 한 순간도 고고한 상아탑 안의 관념이나 화려한 말 잔치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교회의 집사로서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는 여러 궂은 직분과 봉사의 자리를 묵묵히 감당하며 늘 자신의 자리를 소리 없이 지켰다. 일시적인 감정적 호소나 과장된 간증보다는, 논리적인 설득과 일상에서의 성실한 삶의 모범을 보여주는 우직한 스타일이었다. 처음 그를 대하는 이들에게는 그의 어조가 다소 건조하거나 차갑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수십 년의 세월을 곁에서 함께 지켜볼수록 그 묵직한 성실함과 투명한 진실함 은 깨어지지 않는 절대적 신뢰로 이어졌다. 이 책의 전반에 흐르는 차분하고 정직하며, 결코 과장하지 않는 엄밀한 어조는 바로 정원섭이라는 인간의 고유한 성품과 신앙적 태도가 고스란히 문장으로 배어난 당연한 결과물이다.
그가 보여준 신앙의 깊이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그는 성경을 수십 회독 읽어 내렸을 뿐만 아니라, 창세기 1장 1절의 첫 글자부터 요한계시록 22장 21절의 마지막 아멘에 이르기까지 전 장의 말씀을 두꺼운 노트에 손으로 직접 필사 했다. 몇 해 전 터키와 그리스로 성지순례를 함께 떠났을 때, 그는 그 무겁고 두꺼운 성경책과 필사 노트를 가방에 챙겨와 매일 밤 숙소에서 정해진 분량의 필사를 단 하루도 거르지 않았다. 시차가 뒤바뀌고 고된 이동 현장이 반복되는 빽빽한 여행 일정 속에서도, 만물의 기원이 선언된 말씀을 손 끝으로 꾹꾹 눌러 쓰는 작업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순례를 마치고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경 전 권의 필사를 완수해 냈다.
매일 새벽 스탠드 불빛 아래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성경을 필사하는 그의 모습을 생각하며, 나는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모태신앙인으로 평생을 교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고 주일학교 교사로 헌신해 왔지만, 성경 전체를 내 손으로 필사해 보기는커녕 평생에 성경 1독조차 온전한 집중력으로 마쳐본 기억이 까마득 했기 때문이다. 익숙함이라는 타성에 젖어 있던 나의 얄팍한 신앙이 그의 정직한 영적 노동 하에 거울처럼 폭로되는 순간이었다.
세상의 기준에서 대학교수이자 과학자로서 그는 충분히 성공하고 존경받는 삶의 궤적을 그렸다. 그러나 그에게 그 모든 성공은 인간 정원섭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창조주가 허락하신 과분한 감사 제목이었고, 사람들 앞에 내세울 훈장이 아니라 주님 발 앞에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할 부채였다. 나는 그의 은퇴 이후의 삶을 근거리에서 지켜보면서, 세상이 말하는 ‘은퇴(Retirement)’라는 단어가 그에게는 아무런 구속력을 갖지 못함을 깨달았다. 그는 여전히 창조의 원리를 연구하고, 신앙의 글을 집필하며, 선한 소명으로 인생 3모작을 살아가고 있다.
성경 마태복음 20장 16절에는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는 주님의 엄중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나는 모태 신앙이라는 종교적 기득권과 오랜 신앙 경력을 은근한 훈장으로 여기며 살아왔지만, 인생의 중반에 이르러 늦깎이로 포도원에 들어온 정원섭 교수의 치열한 영성과 말씀 앞의 정직성을 마주할 때마다 이 구절이 송곳처럼 내 심장을 찔렀다. 먼저 온 나는 그 오랜 시간 동안 과연 무엇을 남겼단 말인가? 그는 비록 남들보다 늦게 복음의 비밀을 발견하고 신앙의 궤도에 진입했으나, 그 집약된 시간 동안 나보다 훨씬 더 깊은 층위에서 말씀을 온몸으로 묵상하고, 더 처절하게 자신의 삶을 신앙의 법도에 정렬시켰다.
신학적으로 고찰할 때, 신앙의 성숙과 영적 깊이는 결코 물리적인 종교 연수의 길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는 외적 사실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았다’는 내적 성숙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날마다 겸손하게 살아있는 말씀 앞에 자신을 발가벗기는 자, 자신의 영적 무력함과 파산을 정직하게 고백하는 자, 그리고 그 절망의 자리에서 창조주의 은혜의 밧줄을 필사적으로 붙잡는 자가 가장 성숙한 자다. 이것이야말로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하나님 나라의 신비로운 역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종교적 타성에 젖어 게으르기 짝이 없는 나에게, 이토록 무서운 치열함을 지닌 신앙의 동지가 곁에 있다는 사실은 축복인 동시에 거룩한 영적 두려움이다. 신앙의 선배로서 마땅히 영적 모범이 되어야 할 내가 오히려 그의 뒷모습을 보며 뒤처진 채 서 있음을 매 순간 발견하기 때문이다. 복음서의 엄위한 경고가 바로 나를 향해 작동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낀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단순히 편안한 신앙의 동지라고 만 부를 수 없다. 그는 내 평생의 종교적 게으름을 부끄럽게 채찍질하고,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삶의 궤적으로 묵묵히 보여주는 나의 진정한 ‘영적 스승’에 가깝다.
더욱이 정원섭 교수의 이러한 학문적 고찰과 신앙적 성찰은 이론의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의 삶 전체를 말씀의 궤도에 일치시키려는 실제적인 여정으로 끊임없이 확장되고 있다. 그는 이번 저작의 출간에 만족하지 않고, 벌써 신앙과 삶의 완전한 통전적 일치를 추구하는 차기 저서 ‘말씀으로 지어진 세계, 말로 살아가는 인간’의 발행을 준비하는 중이다.
제2부: 세 부분으로 읽는 창조의 다차원적 구조
정원섭 저자가 평생의 학문적 탐구와 영적 고뇌를 쏟아 부어 완성한 이 책의 구조는, 거친 세상의 학문과 성경의 진리가 어떻게 하나의 거대한 강줄기로 만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정교한 설계도와 같다. 책은 크게 세 개의 기둥으로 견고하게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보이지 않는 것 너머를 읽는 법’은 과학이 지닌 경이로운 강점과 동시에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내재적 한계를 학자의 정직함으로 명확하게 규정하는 기초 공사 작업이다. 저자는 부산 앞바다인 광안리 백사장에서 주운 정교한 동전의 비유와 생명을 품고 있는 작은 콩 한 알의 비유를 도입한다. 과학은 동전의 금속 성분이 무엇이며 콩의 조성과 구조를 정밀하게 분석한다. 즉 이미 존재하는 피조 세계가 ‘어떻게(How)’ 작동하고 굴러가는지를 분석하는 데는 지구상에서 가장 탁월한 도구다.
그러나 그 동전을 처음 기획하고 설계한 제작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그리고 자연계의 근원 물질이 ‘왜(Why)’ 아무것도 없는 허무 대신 지금의 형태로 존재하게 되었는지 라는 근본적인 ‘기원(Origin)’과 ‘목적’의 질문 앞에서는 과학의 현미경은 무력하게 침묵할 수밖에 없다. 토머스 쿤의 과학철학을 빌려 과학적 진리라는 것조차 역사 속에서 끊임없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통해 수정되고 보완되어 온 유한한 지식 체계임을 증명하며, 과학을 절대적 종교의 자리에 올려놓으려는 현대 ‘과학주의(Scientism)’의 오만함과 맹점을 날카롭게 경고한다.
제1부의 가장 탁월한 사유적 기여는 ‘보이는 세계’와 물질 너머의 ‘보이지 않는 세계’ 사이의 단절을 깨뜨리고 연속성을 부여한 지점이다. 저자는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실재들, 즉 신뢰, 약속, 사랑, 양심과 같은 가치들이 실제로 거시적인 물질 세계를 움직이고 통제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이를 재료공학적 물리 현상으로 명쾌하게 유추하는데, 단단한 고체 상태의 ‘얼음’이 열에너지를 받으면 유동적인 ‘물’이 되고, 더 높은 에너지를 가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기체인 ‘수증기’로 승화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분자와 원자, 그리고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장(Field)으로 결합 구조를 쪼개고 들어갈 때, 미시 세계의 본질은 꽉 찬 알갱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망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즉, 성경이 말하는 보이지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추천사
안종대 | 학문으로 탐구하고, 믿음으로 완성한 창조의 기록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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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문
김하기 | 말씀으로 지어진 세계, 그리고 말씀으로 지어진 사람 14
프롤로그 31
제 1 부
창조 1 보이는 것 너머를 보는 법[경계]
과학과 하나님의 창조를 함께 바라보기
서론 39
1장 | 과학은 무엇을 설명할 수 있으며, 무엇에는 답하기 어려운가? 44
2장 | 과학은 왜 끊임없이 수정되고 확장되는가? 51
3장 |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 56
4장 | 빛 - 창조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창 63
5장 | 시간-공간-에너지-물질의 상호 관계 69
6장 | 파동이 “입자적 결과” 를 낳는 경험: 말씀-창조의 비유적 통로 74
제 2 부
창조 2 말씀으로 지어진 하나님의 창조
“말씀”은 왜 창조의 수단이 되는가?
서론 85
7장 | \u0007현대과학이 말하는 물질 창조를 이해하기 위한 최소 개념: 에너지-정보-구현의 삼각형 88
8장 | 자연의 에너지와 ‘관계’ 의 신학: 창조는 고립이 아니라 연결이다 93
9장 | 성경이 말하는 창조주: 스스로 있는 자 98
10장 | “말씀으로 물질이 만들어지기 위한 조건”의 정리 103
11장 | 창세기 1장 이해 109
12장 | 시간-공간-에너지-물질을 질서-관계-의미의 구조로 연결 129
13장 | “말씀 창조”를 한 장으로 압축하는 모델 135
제 3 부
창조를 다시 묻다: 창조가 남긴 흔적
과학이 닿지 못한 경계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읽는 방법
서론 145
14장 | \u0007지구는 왜 “살 수 있는 곳” 인가? 하나님이 준비한 지구의 안전장치 149
15장 | 과학 발달사의 방향성: 힘에서 관계로 153
16장 | 숫자와 질서: 발명된 것이 아니라 발견된 세계 157
17장 | 기적과 예언: 비합리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사건 172
18장 | 성경을 신뢰하게 하는 신학적 근거와 역사적 맥락 182
19장 | 성경의 말씀을 응하려고 과학이 발견한 것들 198
20장 | 인간: 창조를 떠올리게 하는 가장 깊은 통찰 213
에필로그 219
부록 225
참고문헌 266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출판사 제출)
부가기호 03200: 독자 대상 교양 · 발행 형태 단행본 · 내용 분류 종교.
분량·판형: 268쪽 · 판형 152*225.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ISBN 서지정보 · 부가기호 뜻은 국립중앙도서관 ISBN 안내 기준
과학은 현상을 분석하고 구조를 설명하는 데 탁월하다. 그러나 설명을 넘어 질문을 던질 때, 인간은 그 구조의 근원을 묻게 된다. 이 책의 시작은 보이는 것 너머를 감성적으로 말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구분하고 연결하는 기준을 세우는 데 목적이 있다. (정원섭 (지은이),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펴냄)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2026-08-31에 출간했습니다. ISBN 9788973168828.
정원섭 (지은이)입니다. 자세한 저자 소개는 출판사(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제공 자료를 참고하세요.
알라딘 등 온라인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습니다. ISBN 9788973168828으로 검색하면 정확한 판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정가는 18,000원입니다.